“건설업 99%인 중소업체 문 닫을 것” “중소 사업장 노동자 안전 포기 안 돼”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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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중처법 27일 시행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성명 발표
“영세업체 많은 부산 특히 직격탄”
시민단체 “조속 시행” 요구 집회
최근 한 달 새 10명 사망 지적도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적용을 2년 더 유예하자는 법 개정안의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이에 따라 27일부터는 중처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된다. 전문건설업체를 비롯한 지역의 영세 사업장들은 “사실상 사업장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5일 지역 건설업계에 따르면 중처법 적용의 파장은 중소기업계 전반으로 퍼져 나가지만, 특히 중소·영세 건설업계인 전문건설업계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다른 업종과 비교했을 때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전문건설업이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전문건설업이란 건설공사의 각 공종별 전문공사를 직접 도급 또는 하도급 받아 수행하는 업종이다. 부산의 경우 약 3000곳의 전문건설업체가 등록돼 있다. 부산의 한 설비업체 대표는 “50인 미만 건설 사업체는 주로 대기업 하청의 재하청을 받아가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현장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건설경기 악화로 수익도 제대로 나지 않는 판국이라 ‘예비 범법자’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전문건설협회 한종석 사무처장은 “대기업의 경우 안전관리자를 확보하는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영세업자들은 컨설팅이나 안전관리 인력 확보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며 “실질적으로 재해 예방이 되는 방안을 마련해야지,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처벌 형태의 부담을 씌우는 법은 시장의 논리를 완전히 거스르는 행태”라고 말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50인 미만 건설 현장까지 법이 확대·적용되면 건설업계의 99%가 넘는 중소 건설기업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25일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중대재해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연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25일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중대재해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연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총연합회는 “건설업계는 최근 고금리와 자재·인건비 급등에 따른 공사비 상승,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해 2중, 3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로 인해 대표이사가 처벌받게 되면 기업의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 폐업으로 이어진다. 결국 근로자 또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전국의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96.8%가 중처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종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준비가 미흡한 이유에 대해 전문건설사들은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그 내용의 모호함(67.2%) △비용 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등을 꼽았다.

건설업계와 달리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중처법 유예 무산에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부산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중대재해 사고의 사각지대인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주장은 전체 사업체 중 단 1.2%의 업체에만 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하겠다는 일종의 ‘생명안전 포기 선언’과도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노동청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이날까지 한 달간 부산지역에서 10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1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부산노동청의 ‘특별현장검점의 날’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부산지역 산재사망 노동자 숫자는 40명이었다. 원인별로 보면 △떨어짐 24명 △물체에 맞음 5명 △깔림 4명 △끼임 3명 등이다. 운동본부 박수정 집행위원장은 “영세업체들이 지금 당장 법을 따르기 힘들다면 정부가 나서 컨설팅이나 각종 지원책을 통해 현장에 법을 안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며 “만일 이번에 2년 유예를 해줬다면 2년 뒤에 추가로 유예를 해달라는 목소리가 또 나올 것이다. 자본의 논리만을 앞세워서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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