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돌려 줘” 임차권 등기명령, 부산 2년 새 8배 급증
2021년 366건서 작년 2964건
전세사기 증가·역전세난 여파
부산진·수영·연제·동래구 많아
부동산 경매 건수도 지난해 2배
직장인 서 모(32·부산 연제구) 씨는 지난달 중순 전세 보증금 문제로 밤잠을 설쳤다. 계약 만료일에 맞춰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 이삿날까지 확정했는데, 임대인이 뒤늦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며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내용 증명을 보내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임대인은 최소 한두 달 뒤에야 보증금을 줄 수 있다고 버텼다. 결국 서 씨는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한 뒤 여기저기서 신용대출을 끌어모아 잔금을 맞췄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의 여파로 세입자 권리를 지키는 수단인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부산지역에서 2년 만에 8배나 급증했다.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31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지역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집합건물 기준)는 모두 2964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부산의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66건으로 2년 만에 8배나 증가했다. 대법원이 2010년 임차권 등기명령 건수를 공개한 이후 최다 수치다.
전국적으로 보면 지난해 4만 5445건의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이 있었고 서울(1만 4787건)과 경기(1만 1995건), 인천(9857건) 등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신청이 많았다. 부산의 경우 부산진구(609건), 수영구(323건), 연제구(290건), 동래구(226건) 등에서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이 많이 집계됐다.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이 많은 부산진구나 수영구, 동래구에서는 지난해 수십억에서 많게는 100억 원이 넘는 전세사기 범행이 잇달아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2022년부터 전셋값이 급락하며 역전세 문제가 심화한 데다, 전세사기가 급증하면서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법원의 임차권 등기명령 결정이 임대인에게 고지되기 전이더라도 임차권 등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것도 신청 건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지난해 부산지역 토지, 건물 등 부동산 임의경매 개시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2022년에 비해 105.4%가 늘어난 4196건이었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전국의 임의경매 건수는 9년 만에 10만 건을 넘어섰다. 전세사기는 물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족’들이 고금리 장기화로 이를 버티지 못하자 경매 물건이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임차권 등기명령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임차권)를 해당 부동산 등기에 기록하는 행위.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한 채 이사를 하더라도 법원 명령에 따라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