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애꿎은 선장 방문 앞 ‘무는 개 조심’ 조롱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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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보다 못한(?) 선장 신세
트롤선에서 심심풀이로 애완견 키워
근친상간 마다않는 개 번식력 왕성
애지중지하다 나중엔 ‘걸레쪽 신세’
선원들, 임금 해결 못한다고 개 취급

원양어선에서 물고기를 한 가득 어획한 그물을 양망한 모습. 김종찬 제공 원양어선에서 물고기를 한 가득 어획한 그물을 양망한 모습. 김종찬 제공

1991년 초에 나는 3600톤급 트롤선 다니카호를 타고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어장에 나갔다. 전체 선원은 70명이었는데 30명은 한국 선원이고 40명은 중국 선원들이었다. 그중에는 조선족도 섞여 있었다. 외항선을 타다가 어선을 타고 날씨가 험악하기로 유명한 뉴펀들랜드 어장에 나간 것은 해양문학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조업 해역은 캐나다, 뉴펀들랜드 200해리 바깥 공해상으로 해저는 대륙붕 경계 부근이었다. 이 어장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었다. 겨울철에는 거친 풍랑으로 하루도 잔잔한 날이 없었고 봄이 되면 북쪽 세인트로렌스강으로부터 유빙의 대열이 떠내려와 온 바다를 허옇게 뒤덮었다. 해저의 저질(底質) 또한 요철이 심한 곳으로 대륙붕을 따라 크고 작은 낭떠러지나 협곡이 들쑥날쑥 이어져 있었다. 상세한 어장도를 가지고 있는 선장도 해저에 날카롭게 치솟은 너설(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삐죽 나온 곳)에 그물이 걸려 통걸이(그물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장에서는 허연 유빙의 무리를 볼 수 있다. 김종찬 제공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장에서는 허연 유빙의 무리를 볼 수 있다. 김종찬 제공

뉴펀들랜드 어장은 그랜드뱅크의 무진장한 어자원이 알려지면서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 나라 사이에 250년 동안이나 어업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프랑스 어부들의 전진기지였던 생피에르 섬에는 아직도 당시의 포신들이 바다를 겨냥하고 있다.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1805년부터 1892년 사이에 뉴펀들랜드 근해 및 그랜드뱅크 어장에서 실종된 어선은 600여 척이며 함께 실종된 어부는 30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유령 어선 헤스켈호 이야기는 아직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어선이 뉴펀들랜드 어장에 처음으로 진출한 것은 1982년 삼원어업 소속의 1500톤급 트롤선 삼원호였다. 1991년에는 동원산업, 북양수산 등에서 내보낸 2000~3000톤급 트롤선 8척이 조업하고 있었다. 1989년에는 1500톤급 레인보우호가 어장에 도착했으나 무시무시한 강풍과 높은 파도를 보고 기겁을 한 선원들이 조업을 거부해 라스팔마스 기지로 되돌아간 사건도 있었다. 어장에 도착하자마자 침몰한 슈퍼 산욘큐 호산나호 사건도 뱃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물고기를 가득 품은 그물을 양망할 때 그 주위로 갈매기들이 선회하는 모습. 김종찬 제공 물고기를 가득 품은 그물을 양망할 때 그 주위로 갈매기들이 선회하는 모습. 김종찬 제공

뉴펀들랜드 어장의 어려움은 험악한 날씨뿐만 아니었다. 저질이 나쁘고 수심은 깊어 투양망 작업도 위험하지만 이 어장에서 잡히는 어류도 주어종이 적어(赤魚)였다. 적어는 가시가 많아 처리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장기간 항구에 입항하지 않고 잡은 고기를 바다에서 운반선에 풀어주는 양상전재 작업을 하다 보니 선용품이나 주·부식 등 보급 관계도 어려웠다. 어로작업도 고된 데다 별다른 즐거움이 없으니 선원들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다툼이 잦았다. 그래서 어느 트롤선에서 선원들이 선장의 허락을 받아 애완견을 키우게 되었다. 동물 검역은 상선이 입항하는 외국 항구에서는 아주 엄격하지만 트롤선이 입항하는 어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까다로운 편이다.

처음 애완견을 키우던 배의 선원들이 너무 귀엽다고 자랑을 하니 소문이 퍼져서 다른 배 선원들도 선장한테 졸라 개를 키우게 되었다. 한 마리만 키우면 흔들리는 배 안에서 개도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짝을 맞춰 한 쌍을 구했다. 그렇게 해서 뉴펀들랜드 어장에 진출한 한국 트롤선에 개 가족들이 선원들과 동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승선했던 다니카호는 어장에 늦게 진출했기 때문에 개를 키우지 않았다. 다니카호가 어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쁜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선에서 선원들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상을 차린 모습. 김종찬 제공 어선에서 선원들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고사상을 차린 모습. 김종찬 제공

개들은 성장이 생각보다 빠르고 성견이 되면 사람들이 본다고 해서 성욕을 억제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 시골 골목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흘레붙은 개들을 보면 시샘 많은 과수댁이 찬물을 끼얹었는지 모른다. 같은 모태에서 태어나 한 배 안에서 강아지 때부터 같이 자랐다고 해도 촌수도 모른다. 교미기가 되어 암컷이 분비물을 흘리며 냄새를 풍기면 수컷은 볼그족족한 엘레지를 들이밀며 근친상간을 한다. 그 꼴을 보면 젊은 선원들의 입에서는 ‘뱃놈들은 개보다 못하다!’는 불평이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어쨌든 뉴펀들랜드 어장 트롤선에서 귀염받던 애완견이 애물단지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아지 때나 귀엽지 성견이 되어 새끼를 낳고 개 식구가 많아지면 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좁은 배 안에서 비싼 양식만 축내고 개똥이나 싸고 다니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배 안에서 개를 잡아먹거나 유기하면 부정을 탄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함부로 개를 학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을 최고로 여기는 중국 선원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금기나 두려움이 없다.

뉴펀들랜드 어장에서 조업하는 한국 트롤선들의 선장과 통신장은 매일 미팅 시간을 정해 놓고 서로 교신을 했다. 어황 정보도 나누고 그날그날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이다.

성질이 괄괄한 ‘골든벤츄어호’ 선장이 화가 나서 통신기에 대놓고 씩씩거렸다.

“고기도 안 잡히는데 오늘은 양망하다 멍청한 놈이 와프에 머리를 맞아 뻗어버렸소. 며칠 전에 어느 중국 놈이 강아지 한 마리를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그놈의 개 새끼가 저주를 하는지 계속 사고가 터져요. 기분도 울적한데 오늘은 선장들끼리 노래 시합이나 한 번 합시다.”

대명호 선장도 강아지 좀 가져가라고 난리였다. 오래전부터 개 한 쌍을 키워서 새끼 세 마리를 낳았는데 그 강아지들이 벌써 커서 시집, 장가갈 때가 되었는데 늙은 어미 개가 그새 또 새끼를 배 출산 날이 임박했다고….

한국 트롤선에서는 개를 처음에는 애지중지 키우다가 나중에는 걸레쪽처럼 취급했다. 사진은 유기견 모습. 부산일보 DB 한국 트롤선에서는 개를 처음에는 애지중지 키우다가 나중에는 걸레쪽처럼 취급했다. 사진은 유기견 모습. 부산일보 DB

오랜만에 어획물을 하역하기 위해 생피에르 항에 입항했는데 대학 동기생인 이민우 선장을 만났다. 이 선장은 ‘삐어니어 9호’ 선장인데 회사에서 밀린 70만 달러의 대리점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배가 붙잡혀 있다고 했다. 그동안 선원들한테 얼마나 시달렸는지 패기 넘치던 얼굴이 폭삭 늙어 있었다.

“배는 조업을 못하고 항구에 묶여 있는데 회사에서 돈을 안 보내주니 대리점에서는 주·부식이 다 떨어져도 굶어 죽든지 말든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안 실어주고…. 선원들은 선장만 들볶는데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정말 죽을 맛이다. 이제는 돈이고 뭣이고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데 그것도 맘대로 할 수 없고. …개를 세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전에는 선원들이 목욕도 시켜주고 했는데 지금은 하도 천대를 받아 개가 아니라 걸레가 걸어다니는 것 같아. 개가 지나가면 선원들이 ‘밥값도 못하는 이너무 개새끼!’ 하면서 발길로 툭툭 차는데 그게 꼭 나보고 하는 소리 같다니까. 어느 날 아침에 내 방문에 어느 놈이 문패를 붙여 놨는데 뭔가 하고 봤더니 ‘개조심, 무는 개니 조심할 것!’이라고 써 놨더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민우 선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글/김종찬 해양소설가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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