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주꾼 거짓 신고에 함정 10척 작전 돌입 [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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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거문도 허위 간첩 신고 사건
포상금 욕심내고 ‘간첩 봤다’ 큰일 꾸며
군경합동 수사본부 설치해 수색도 나서
낌새 이상 다그치자 ‘죽을죄’ 용서 빌어
벌칙 없이 풀어줘… 나중에 진상 알려져

1996년 9월 북한 무장공비 26명이 잠입했을 당시, 강릉해안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 연합뉴스 1996년 9월 북한 무장공비 26명이 잠입했을 당시, 강릉해안에 좌초된 북한 잠수함. 연합뉴스

2012년 8월 10일. 신문을 펼치다 참으로 분통 터지는 기사를 보았다. ‘지난달 5일 오전 8시. 112 종합 상황실에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무장공비로 추정되는 잠수함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신고로 경찰 30명, 해경 8명, 육군 41명, 해군 97명 등 총 176명의 수색 인력과 해군 경비정 1척, 고속정 2척, 항만 경비정 3척이 투입되어 1시간 이상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지만 허탕이었다. 경찰은 허위신고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최모(49) 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경찰과 군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30여 년 전에 있었던 거문도 대간첩작전이 떠올랐다.

1973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때 호위구축함인 DE-73 충남함 보수관이었다. 충남함은 그날 제주도 남방에서 순항속력으로 담당 해역을 경계하고 있는데 함대사령부로부터 긴급 전문이 왔다. ‘거문도 간첩 상륙. 전문 수령 즉시 거문도 외곽에서 간첩선 도주로를 차단하고 의아 선박을 검색하라!’ 충남함은 부랴부랴 보일러 증기압을 최대로 올리며 전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속력을 올리자 함수에 새하얀 물갈기를 세우며 경주마처럼 껑충껑충 뜀박질을 했다. 도주하는 간첩선을 갑작스럽게 조우할 경우를 대비해서 함장은 멀리서부터 각종 장비 점검을 하고 전투배치 명령을 내렸다. 거문도가 가까워질수록 승조원들은 바짝 긴장해서 눈빛이 빛났다. 함교 외벽에 자랑스러운 간첩선 격침 마크를 하나 더 다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전문으로 지시한 위치에 도착했을 때는 해질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의아 선박은 한 척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뒷줄 오른쪽)가 1972~1974년 해군 장교로 호위구축함인 DE-73 충남함에서 보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동료들과 함상에서 찍은 사진. 김종찬 제공 필자(뒷줄 오른쪽)가 1972~1974년 해군 장교로 호위구축함인 DE-73 충남함에서 보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동료들과 함상에서 찍은 사진. 김종찬 제공

이 작전에 동원되었던 해군 함정은 구축함을 비롯해서 초계함, 고속정 등 십여 척이나 되었다. 간첩이 출몰했다는 거문도에는 경찰 및 해병대 일개 중대가 긴급히 투입되었다. 섬 외곽으로는 함정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경찰과 해병대가 온 섬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간첩선은커녕 간첩의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작전은 아무런 성과 없이 사흘 만에 종료되고 말았다. 당시 매스컴에는 이 사건이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1981년, 나는 외항선을 타면서 동승했던 거문도 출신 조기장 박필만 씨의 입을 통해서 뒤늦게야 그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박필만 씨는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 허위 간첩 출현 신고를 했던 정칠봉(가명) 씨와 한마을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모주꾼인 정칠봉 씨는 그날 아침나절부터 마누라한테 붙잡혀 어쩔 수 없이 콩밭을 매고 있었다. 한낮이 되자 뜨거운 햇살은 등덜미를 푹푹 삶기 시작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이 따가웠다. 목은 마르고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지만 새참 갖다 줄 사람도 없었다. 칠봉은 제풀에 짜증이 나서 호미질이 거칠어졌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지못해서 하니까 온갖 잔꾀가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에 반상회에서 마을 이장이 하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간첩선을 신고해서 나포하면 포상금 3000만 원! 간첩을 신고해서 체포하면 500만 원!’ 엉뚱한 생각을 하니 손발이 따로 놀았다. 헛된 꿈 깨라고 호미 끝이 손등을 쪼고 말았다. ‘아얏!’ 손등에서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피를 보는 순간 칠봉은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우기면 알 게 뭐야?’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호미를 내팽개치고 일어섰다.


경찰이 산간 오지 40여 가구의 독가촌을 방문해 공비 신고 요령 등을 알려주는 1990년대 모습. 연합뉴스 경찰이 산간 오지 40여 가구의 독가촌을 방문해 공비 신고 요령 등을 알려주는 1990년대 모습. 연합뉴스

“밭매다가 갑자기 어디로 내빼요?” 마누라의 타박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배탈 난 사람처럼 아랫배를 싸안으며 바쁜 걸음을 쳤다. 마누라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칠봉은 제 손으로 옷을 찢고 흙바닥에 뒹굴었다. 뾰족한 돌멩이로 얼굴을 때려 상처를 만들었다.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파출소를 향해 달렸다. 파출소에 들어선 칠봉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가가 간첩이…… 밭매다가 배가 아파 똥 누러 가는데 낯선 놈이 불쑥 나타나…… 깜짝 놀라서 당신 누구요? 뭣 하는 사람이요? 하고 물었더니 그 새끼가 불쑥 단도를 빼 들고 소리도 없이 날 죽이려고…… 그래 치고받고 싸우다가 도망쳐 왔어요. 그 새끼 간첩이 틀림없어요! 근처 콩밭에는 우리 마누라 혼자서 밭을 매고 있는데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초에 신고를 받은 파출소 당직 경찰은 칠봉의 어설픈 연기가 의심스러웠다. 그렇다고 함부로 묵살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문도에서는 그때까지 간첩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위를 확인하느라고 신고자와 입씨름을 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었다. 나중에 진짜로 간첩이 출현했다는 증거가 나타나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래서 사실대로 관할 경찰서에 보고했다. 경찰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군경합동 거문도 대간첩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6년 11월 강릉의 한 마을에 무장공비로 추정되는 거동 수상자가 침입해 의류와 카메라 등을 갖고 달아난 뒤 군경이 현장조사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1996년 11월 강릉의 한 마을에 무장공비로 추정되는 거동 수상자가 침입해 의류와 카메라 등을 갖고 달아난 뒤 군경이 현장조사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대간첩선 작전은 함대사령부에서 지휘했지만 군경합동수사본부는 전남경찰국에 있었다. 수사본부에 파견된 해군보안대 허양구(가명) 소령은 물샐틈없는 수색 작전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아무래도 신고자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목격자는 신고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칠봉은 신고와 동시에 경찰서로 이송되었다가 수사본부에 이첩되었다. 직책 높은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받던 칠봉은 이제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사건이 이렇게 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허 소령은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자상한 목소리로 달랬다. “이 봐요, 정칠봉 씨.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른 대로 말해 봐요. 내가 책임지고 상부에 보고해서 조금도 벌을 안 받게 해줄 테니. 당신의 신고로 대간첩작전에 동원된 인력과 함정이 몇 척이나 되는지 알아요? 구축함 한 척을 한 시간 동안 움직이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당신 논밭 재산 다 팔아도 어림도 없어요. 지금 거문도 외곽에는 열 척이 넘는 군함이 에워싸고 있어요. 그러니 일 초라도 빨리 바른말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돕는 길이요!”


수색 대원들의 무장공비 수색 작전. 연합뉴스 수색 대원들의 무장공비 수색 작전. 연합뉴스

겁에 질려 불안에 떨던 칠봉은 허 소령이 온화한 말로 회유하자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다. “사실을 콩밭을 매다가 날씨는 무덥고 목은 바짝바짝 타는데 중참 갖다 줄 사람도 없고…… 그래 혼자 부애가 나서 헛손질을 하다가 고마 죄 없는 손등을 쪼싸부렀지요. 손등은 아파 죽것는디 피까지 흐르는 거를 본께 갑자기 간첩을 신고하면 포상금이 나온다는 생각이 나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모르고 끝까지 우기모 될 줄 알고…… 선상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더!”

허 소령은 기가 막혔지만 무식한 촌사람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대간첩작전은 함대사령부의 명령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허 소령의 약속대로 정칠봉은 아무런 벌칙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중국집에서 자장면 대접까지 받았다고 자랑했다. 멀쩡한 몸으로 귀가한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놀려댔다. “어이, 칠봉이. 자네 장한 일 했다고 도경에서 높은 사람 만나고 칙사 대첩 받았다면서? 우리 동네 인물 하나 났네 그려! 그래 포상금은 얼마나 받았는가? 한턱내야 쓰것네!” 글/ 김종찬 해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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