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에게 미술관은 언제나 평생 학교 [세상에이런여행] ④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여행하는 낱말(1)-미술관>
유럽 도시 거닐다 보면 어디나 미술관
독일 곳곳에 크고 작은 6천여 개 산재

전시실 둘러보면 미술 수업 먼저 눈에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다양한 연령 참여
놀이터, 사랑방, 평생 학교 역할 톡톡히
문턱 낮은 미술관이 예술가·관객 재생산

독일 노인들이 프랑크푸르트의 미술관에서 미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독일 노인들이 프랑크푸르트의 미술관에서 미술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편집자 주>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69세’로 지난해 ‘KTV 국민 영상제’에서 독립예술영화 대상을 받았다. 그는 촬영 때문에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담은 책 <여행하는 낱말>을 최근 출간했다. 여행을 목적지가 아니라 주제에 따라 정리, 안내한 그의 글 중 일부를 소개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오후 늦게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길고 깊은 아침 햇살이 도시의 아침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인구가 70만 명 남짓인 프랑크푸르트는 작은 도시면서도 유럽중앙은행이 있어 세계의 은행과 금융기관이 몰리는 큰 도시다.

또한 세계 최대의 모터쇼가 열리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마인강변을 따라서 걸어보니 한눈에 드러나는 사실이었다. 길가엔 아무렇지 않게 명품 차들이 줄줄이 주차해 있었고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층빌딩으로 채워진 스카이라인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강의 남쪽은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개발을 제한해 오래된 도시의 운치를 가득 품고 있었다.

충만한 산책이었다. 프랑크푸르트가 마음에 들었다. 아침 햇살이 유난히 아름다웠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미를 만날 수 있었으니.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블록을 하나 지날 때마다 나오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었다. 유럽의 도시를 거닐다 보면 흔하게 마주치는 게 미술관이지만,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난했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독일 사람들의 미술관 사랑은 유난한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 미술관이 6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지, 발길 닿는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걸려 있는 작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죄다 중장년층이었다. 선생님이 앞서 설명을 하고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수업의 분위기는 자유롭고 가벼워 보였다. 그야말로 일상과 미술이 가까이서 마주한 풍경이었다. 그날 산책에서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들의 뒷모습이었다.

유럽의 어린이들이 미술관 바닥에 앉아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유럽의 어린이들이 미술관 바닥에 앉아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문화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따로 없다. 저마다 고유한 가치와 매력을 가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우러러보는 단 하나는 서양의 미술관 문화다. 도시마다 중심가에 미술관을 여럿 두고 있는 건 우리도 매한가지인데, 미술관과 우리 마음의 거리는 사뭇 다르다. 학생들이 미술관 바닥에 둘러앉아 선생님과 묻고 답하며 견학하는 풍경을 보다가, 아이들의 열의가 높아서 놀란 적이 여러 번이었다. 미술관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닌 이력이 짐작됐다. 샤갈의 그림 앞에 드러누워 있는 아이에게 미술관은 놀이터와 다름없는 곳이었고, 그 아이가 컸을 때는 미술관을 사랑방쯤으로 여길 것이었다. 문턱이 낮은 미술관이 좋은 예술가와 수준 높은 관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었다.

한 어린이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 앞에 드러누워 그림을 보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한 어린이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린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 앞에 드러누워 그림을 보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나는 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 일을 해왔다. 업무를 위해 공부를 하다보면 시각예술 전반을 두루 살피게 된다. 그래서인지 내 일과 장르가 달라도 시각예술의 원류인 미술에 많은 관심을 둔다. 책에서만 보아오던 미술 작품을 직접 만나고 섭렵하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어 왔다.

18세기 전후에 유럽에선 ‘그랜드 투어’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나 철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단숨에 이탈리아에 닿을 수 없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거치며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를 넓히고 예술을 대하는 안목을 높이는 게 그랜드 투어였다. 일종의 여행학교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상류층 자제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가정교사와 하인을 대동하고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열차 산업이 발달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할 수 있게 되면서 그랜드 투어라는 특별한 이름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람객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람객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박 로드리고 세희

오늘날에는 유명한 예술 작품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 도시마다 여행 가이드북을 펼치면 너 나 할 것 없이 미술관을 중요하게 소개한다. ‘핵심 관광 코스’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랜드 투어의 전통이 남아서일 것이다. 나 또한 여전히 미술관을 중심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낯선 도시에 처음 도착하면 막막함이 몰려온다. 가이드북에서 보았거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명소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알 수 없고, 지하철과 버스의 요금 체계도 모르고, 어디서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배낭을 내려놓으면 첫 번째 일정으로 대표적인 미술관을 다녀오면서 도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간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들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박 로드리고 세희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들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박 로드리고 세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고흐의 ‘해바라기’같은 유명한 그림 앞에는 사진 한 장 남겨 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작품의 유명세에 함몰되어 제대로 된 감상은 하지 않고 사진 찍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미술 작품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찾는 일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미술과 우리 사이의 거리도 좁혀질 것이다.

미술관을 찾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미술 작품을 보고 즐기는 안목도 깊어질 것이고. 과거의 그랜드 투어는 일생의 어느 특정한 기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그랜드 투어는 일생에 걸쳐 조금씩 완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미술관은 언제나 그곳에 있어왔던, 평생의 학교다.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