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망국의 헐벗은 여인네들 거리로 내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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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로커 죽음과 소비에트 연방 붕괴
1990년 빅토르 최 의문사, 사회 붕괴 징표
당시 입항 수속 관리들 대놓고 물품 요구
마피아, 부두 장악해 매춘 뚜쟁이 노릇도
인민시장선 굶주린 이들 모든 것 다 팔아

러시아 젊은이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모스크바 빅토르 최 추모의 벽. 연합뉴스 러시아 젊은이들의 자유를 상징하는 모스크바 빅토르 최 추모의 벽. 연합뉴스

‘병사들의 구두코엔 먼지만 쌓이고 공장의 기계는 녹슬기만 한다. 호밀빵 배급소 대기 줄은 길어만 가고 노동자의 허리는 줄어만 간다. 이대로는 싫다, 이대로는 싫다. 우리는 원한다, 변화된 내일을!’ 러시아에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 빅토르 최가 결성한 록그룹 키노가 불러서 젊은이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변화를 꿈꾸던 빅토르 최의 노래들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페레스트로이카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했지만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캄차트카 거리의 지하 보일러실에서 화부 노릇을 하면서 숙명처럼 노래를 불렀다. 1984년 22세 때 게오르규, 유노, 알렉세이와 함께 4인조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하여 레닌그라드 록 축제에 참가하여 이름을 알렸다. 1987년에는 ‘혈액형’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전쟁을 반대하고 변화를 꿈꾸는 메시지라 소련 사회에 염증을 느끼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 생필품 난 때 구호 물자를 실은 선박이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 생필품 난 때 구호 물자를 실은 선박이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터지자 그해 12월부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개국에서 소비에트 중앙정부의 강제 병합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독립을 원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차츰 규모가 커지면서 소련 정부는 통제 불능 상황이 되었다. 1987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시행되면서 키노의 인기와 활동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빅토르 최의 인기는 1988년에 절정에 올라 공연 입장권은 암거래로 열 배를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목덜미를 덮는 긴 머리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신들린 듯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기타를 치면 젊은 남녀 팬들은 우레같이 열광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프랑스, 덴마크 등 자유국가에서도 공연을 했다. 1990년 초 모스크바 레닌 스타디움에서 열린 공연에는 6만여 명의 관객이 몰려 축구경기장이 꽉 찼다고 한다. 어렵사리 당국의 허가를 받아 10월에는 아버지의 조국인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호화 유람선이 정박한 옆에서 오래된 문화유적인 네바강 다리가 대대적으로 해체 복원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강 모습. 연합뉴스 호화 유람선이 정박한 옆에서 오래된 문화유적인 네바강 다리가 대대적으로 해체 복원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강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8월 15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빅토르 최가 몰고 가던 승용차가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버스와 정면 충돌해 차체가 뭉개지면서 시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던 것이다. 사고 버스 운전수는 빅토르 최가 누군지 알지도 못했고 그가 과속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돌발 사고였다고 주장했지만 그걸 믿는 러시아인은 별로 없었다. 개혁 개방을 반대하는 보수파와 뒷전에서 암약하는 KGB 출신들이 눈엣가시 같은 빅토르 최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고 추모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장례식을 몇 차례나 연기했다고 한다.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음 해인 1991년 12월, 소비에트 연방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1994년 5월 24일, 나는 냉동화물선 미스트라우(Mistrau)호를 타고 빅토르 최의 묘지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입항했다. 화물은 콜롬비아 투르보(Turbo)항에서 선적한 바나나 16만 6000박스였다. 당시 러시아는 정치, 경제,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라 입항하는 외국 배 선주들은 아무도 국영 대리점을 믿지 않았다. 미스트라우호도 발트해에 들어서기 전, 덴마크의 칼룬드 보그(Kalund borg)에서 미리 연료유를 싣고 주·부식을 구입하고 선용금을 받았다. 미스트라우호가 접안한 부두는 대(大)네바 강어귀에 있는 23번석 잡화 부두였다. 부둣가에 늘어서 있는 크레인들은 말라죽은 고목처럼 녹슨 팔을 내려뜨리고 움직일 줄 몰랐다. 근처에 우뚝우뚝 치솟은 높은 굴뚝에서는 한 군데도 연기를 내뿜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원료 부족으로 놀고 있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물들 너머로 정월 대보름 전야의 둥근 달이 떠오르고, 새들이 날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물들 너머로 정월 대보름 전야의 둥근 달이 떠오르고, 새들이 날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현문사다리를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입항 수속 관리들이 올라왔다. 저마다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듯 제복의 어깨에는 왕별 견장을, 소매에는 금줄 수장을, 가슴에는 약장을 울긋불긋하게 달고 있었다. 관리들은 입항 서류는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밀쳐놓고 먹이에만 눈독을 들였다. 본드 스토어에 담배 위스키가 얼마나 있는지, 부식 창고에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가 얼마나 있는지 그것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검역관과 세관원이 창고에 들어가 재고를 확인하고는 관리 한 사람당 쇠고기 2kg, 말보로 두 보루를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세계 여러 항구에 입항해 봤지만 쇠고기를 달라는 관리는 처음이었다. 시중에서는 쇠고기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소리였다. 선원들이 먹는 부식을 줄 수는 없다고 거절하자 부식 창고를 밀폐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부식 창고가 불결해 전염병을 옮길 우려가 있다고……. 아무리 국가 경제가 파탄 났다고 해도 제복을 입은 관리들이 쇠고기 한 덩이에 자존심을 내던지다니. 그건 부패하고 가난한 아프리카 관리들이 써먹는 가장 치사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관리들이 염치 불고하고 내놓으라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고성을 지르며 흥정한 끝에 쇠고기 1kg과 담배 한 보루로 낙착을 봤다.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해바라기기름 가게에 고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해바라기기름 가게에 고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수속이 끝난 뒤 누군가가 선장 방문을 두드렸다. 금방 수속을 마친 여자 출입국 담당 관리였다. 검은 제복 차림 그대로였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서 있다가 선장이 문을 열자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여자가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또 찾아왔을까? 선장은 경계심이 앞섰다. 여인은 다 안다는 듯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캡틴, 죄송하지만 절 좀 도와주세요. 혹시 보드카 좋아하세요? 사실은 제 남편이 월급도 못 받고 있어 내 월급만 가지고는 세 아이들 게라쿨래스(보리죽) 먹여 키우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 로원베리 레드라벨은 한 병에 5달러이고 블루라벨은 10달러입니다.” 여인은 가방 속에서 보드카 두 병을 꺼내놓으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선장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살기가 어려우면 제복 입은 관리가 이렇게 남 부끄러운 짓을 하겠는가? 선장은 쇠고기 때문에 치솟았던 짜증도 잊고 측은지심이 앞서 두 병을 모두 사 주었다.


러시아 경제 혼란이 빚어진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늘어선 모습. 연합뉴스 러시아 경제 혼란이 빚어진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늘어선 모습. 연합뉴스

부원 식당에서는 가죽 점퍼를 걸친 두 건달 녀석이 선원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한국 선원들을 많이 상대해 본 듯 제법 능숙한 우리말과 쉬운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 친구들, 만나서 반갑다. 내 이름은 드미트리, 이 친구는 오시모프다. 우리 나쁜 사람 아니다. 한국 친구들도 많이 있고 예쁜 아가씨들도 많이 알고 있다. 모두 직장 여성이다. 재봉사, 간호사, 제빵사, 굼 점원, 요리사……. 연애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말해라. 그래야 퇴근할 때 미팅을 시켜줄 수 있으니까. 우리 거짓말 안 한다.” 공산국가에서는 어느 나라나 매춘이 불법이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뚜쟁이 노릇을 했다. 그들은 러시아 마피아의 행동 대원들이었다. 선원들과 부두 노동자들은 세관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몸수색을 당했지만 그들은 승용차를 몰고 맘대로 드나들었다. 게이트 밖에서 상륙하는 선원들을 기다리는 택시 운전수들도 모두 그들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자동차 부두에는 고급 외제 승용차 수십 대가 통관 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으로 낡아빠진 고물차 한 대가 굴러왔다. 건장한 두 젊은이가 내리더니 고물차의 번호판을 뜯어내어 고급 외제차에 부착했다. 고물차는 버려두고 외제차만 몰고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세관 게이트로 버젓이 빠져나갔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이 바로 러시아 마피아들이었다. 그들의 보스는 은퇴한 KGB 고위층이라고 했다.

거리에서 열린다는 인민 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전차를 탔다. 리테아누이 대로로 가는 155번 노선이었다. 요금은 150루불이었다. 1992년 3월까지만 해도 15코페이카–1루불은 100코페이카-였는데 1993년 10월에 30루불로 오르고 1994년 5월에는 150루불로 올랐다. 4개월이 지난 그해 9월에는 1000루불로 한꺼번에 거의 7배나 올랐다고 한다. 155번 전차 터미널은 모스크바행 역 앞에 있었다. 역 광장에는 꽃과 과일을 파는 좌판 상인들과 담배, 보드카, 신문, 캐비아 등속을 파는 박스 가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주로 할머니들이 지키고 앉은 꽃 좌판에는 장미 백합 글라디올러스 튤립 같은 화훼와 오이 샐러리 토마토 피망 브로콜리 같은 채소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이 꽃과 채소들은 개인 소유로 분배해준 50평 정도의 텃밭에서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골목 시장에서 한 여인이 개를 팔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골목 시장에서 한 여인이 개를 팔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인민 시장은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대로를 따라 굼(백화점)을 빙 둘러싸며 자연스럽게 줄을 지어 열렸다. 젊은 남자만 눈에 띄지 않을 뿐 열서너 살 소녀부터 아가씨, 아주머니, 중늙은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한 푼이라도 돈이 궁하고 배고픈 사람은 다 나왔다. 어느 누구도 입으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눈빛으로만 말했다. 4시가 지나자 나올 사람은 거의 다 나왔는지 길게 이어진 줄은 굼을 한 바퀴 에워싸고도 남았다. 벨벳 투피스를 입은 미모의 30대 여인은 하이힐과 실크 블라우스를 들고서 수치심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어느 40대 여인은 약사 출신인지 아스피린, 페니실린, 마이신 같은 약 종류를 양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었다. 팔러 나온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사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굼에서 한 블록 떨어진 뒷골목에는 더욱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가 있었다. 여기는 시골 장바닥같이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거리낌 없이 웃고 떠들었다. 들고나온 물건도 대로변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헌 운동화, 낡은 구두, 재봉틀의 북, 드라이브 세트, 톱, 망치, 탁상시계……. 팔아 봐야 흑빵 한 덩이 값도 안 될 성싶었다.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세제 공장에 비누와 세정제를 사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 군중들 모습. 연합뉴스 1998년 러시아 경제위기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세제 공장에 비누와 세정제를 사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 군중들 모습. 연합뉴스

한 집안이 망하면 처자식이 헐벗고 굶주리지만 나라가 망하면 제일 먼저 무너지는 게 아녀자들의 순결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인민 시장에 들고 나갈 겉옷은커녕 갈아입을 속옷 한 장도 없는 여인들은 당장 빵과 바꿀 것이라곤 젊은 육체뿐이었다. 내일 아침에 먹을 흑빵 한 조각 구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국가를 원망하고 정치 지도자를 원망해봐야 나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어느 30대 여성은 자기 자식 2명을 목 졸라 죽이고 경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게라쿨레스(보리죽)도 먹일 수 없는데 어떻게 키우겠는가.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고 이런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자수를 했다.” 판매 부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러시아 언론은 이 비극을 사실 그대로 보도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굶어 죽느냐, 비굴하게 사느냐? 자포자기에 빠졌던 여인들은 하나둘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수없이 빨고 빨아서 너덜너덜해진 팬티와 함께 자존심은 던져버리고……. 최근에는 정치 지도자를 잘못 만난 베네수엘라 인텔리 여성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고 있다고 한다. 글/ 김종찬 해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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