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게가 만든 만다라 구멍?
■차기율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
종교화에는 저마다의 상징적 기호가 사용된다. 기독교 성화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셋이면서 하나라는 성 삼위일체 개념을 담은 삼각형 기호가 있다면 불화에는 원형기호가 존재한다. 이 원형은 만다라(Mandala)라 불리며 산스크리트어로는 ‘본질’을 뜻한다. 위와 아래, 시작과 끝이 없는 원의 형태인 만다라는 끝없이 돌고 도는 윤회,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질서 등을 상징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만다라는 모래로 그려지고 완성 후에는 무심하게 지워지는데 이는 속세의 모든 집착과 욕망을 끊어낸다는 해탈의 의미가 담겨있다.
현대미술가 차기율(b.1961)은 불교의 만다라 기호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여 원시와 문명, 생명의 근원, 자연의 순리를 탐구한다. 〈고고학적 풍경-불의 만다라〉는 붉은 대지의 색감을 띤 테라코타 유닛의 집합으로 이뤄진다. 자세히 보면 표면에 분화구같이 솟아난 작은 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의 구멍이자 만다라의 원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장이 있는 강화도 서해 갯벌에서 파도에 의해 끊임없이 사라지고 생성되는 게 구멍을 조심스레 떠냈다. 분주하게 먹이활동을 했을 작은 생명체의 흔적을 정성껏 바닷바람에 말리고 노천 가마에 구워내는 강도 높은 노동을 반복하여 땅의 풍경을 재구성하였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형상과 숯불에 검게 그을린 표면, 다채로운 흙의 색감은 원시적 미감을 전하기 충분하다.
한편 작가는 테라코타 집합체 위로 얇은 쇠 봉을 박아 하얀 실을 친다. 실은 수직과 수평을 만들며 만다라의 원과 대비를 이룬다. 작품에서 실이 은유하는 것은 문명이다. 인간은 토지를 측량, 개발, 발굴하기 위해 땅에 선을 그어왔다. 작가는 자연이 만들어 낸 다채로운 원형과 질서정연한 문명의 격자를 의도적으로 겹치게 하여 시각적 충돌을 일으킨다. 불의 온도에 따라 발색의 정도가 다양한 붉은 대지를 가로지르는 직선은 땅을 구획하고 소유하며 문명을 발전시켜온 인간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쌓아 올린 인류의 문명과 그 흥망성쇠를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게 구멍과 동일선상에 놓으며 모든 것은 결국 만다라의 원형으로 귀결된다는 통찰을 담아낸다. 차기율의 작품은 현재 진행 중인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전 《노래하는 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2.18까지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박한나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