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산,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경구가 탄생한 산이다 [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
[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 ② 수정산
동네 뒷산에 불과한 평범한 산
평범함 속에 높은 정신 깃들다
산정서 낙동강 보며 역사 전망
수정5동, 산복도로 마삿등 별칭
‘사람답게 살아가라!’ 요산 김정한 문학 정신을 대표하는 이 경구가 탄생한 장소가 수정산과 수정5동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 경구가 나오는 1971년 발표작 ‘산거족(山居族)’에는 두 곳이 각각 ‘S산’과 ‘마삿등’으로만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간극이 있기도 하다.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일깨움은 부산·경상도 정신의 정수이자 우리 문학사가 값지게 일궈낸 하나의 경지일 테다. 그 경구의 웅숭깊음에 주목하느라 구체적 장소를 덜 따져본 측면이 있는 것이다. 특히 수정산은 해발 315m의 동네 뒷산에 불과하고, 수정5동은 그 산자락에 있는 흔한 산복도로 동네다. 부산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곳들이다.
그러나 요산 문학이 일깨우는바, 범상하다는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울리고 사로잡는 가르침은 멀리 높이 있는 게 아니라 동네 뒷산 정도, 아주 가까이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정수리 사상은 평범한 시정(市井) 속에 있는 것이다.
‘산동네 사람들’이란 뜻의 ‘산거족’은 부산식으로 ‘산복도로 사람들’로 풀이할 수 있다. 요컨대 ‘산거족’은 부산 산복도로의 삶에 주목한 작품이다. 1970년대 당시 아주 일반적이었던 부산 산복도로 동네의 산수도 분쟁을 작품화하면서 요산은 부산성(釜山性), 부산 기질에도 주목했다. 소설 주인공은 ‘황거칠’ 노인인데, 그 작명은 ‘거친 부산 야성’을 표현하는 ‘거칠 황(荒)’ 자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의 별명 ‘짝대기’도 ‘불의 앞에 굽히지 않는 부산 야성’을 표현하는 듯하다.
부산 서민들의 애옥살이가 깃든 수정5동 산복도로 동네는 작품에서 ‘마삿등’이다.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자기들이 사는 S산의 한 아랫등성이를 근대화된 이름으로 ××동 산-몇 번지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내림대로 ‘마삿등’이라고만 부른다.’ ‘마삿등’은 굵은 마사토가 나오는 등성이란 뜻으로, 소설에서는 ‘왕모래 등성이’ ‘참모래 언덕’이라 돼 있다.
‘마삿등’은 대체로 산복도로인 망양로와 접한 수성초등학교 일대로 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400여 세대가 사는 산비탈 동네로 나온다. 세월이 오래돼서 그런지 이곳에 50여 년 살았다는 주민들도 “요산 소설도, ‘마삿등’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이 일대 땅은 어느 곳이나 조금만 파면 마사토가 나온다”고 증언했다. 수성초등학교 바로 뒤편에 지난 2019년 개관한 동구어린이영어도서관 공사를 하면서 땅을 팠을 때도 어김없이 마사토가 상당량 나왔다고 인근 주민은 말했다. <부산지명총람 제1권>에도 ‘수정동 일대가 옛날에는 황토가 적고 지면에 모래가 많아 비가 와도 신발에 흙이 묻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황거칠과 마삿등 주민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수정산 자락에서 산수도 수원 두 곳을 차례로 찾아낸다. 처음은 마삿등에서 5리 떨어진 곳이고, 두 번째는 10리 떨어진 ‘굴밤나뭇골’이란 곳이다. 전자는 수정5동행정복지센터 인근에서 수정산으로 오르는 골짜기(실제 이곳에 약수터가 있다)이고, 후자는 수정산가족체육공원이 있는 옆 골짜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돈 가진 자들이 갖은 수를 동원해 그 일대를 불하받은 뒤, 생트집 잡듯 산수도를 철거할 것을 느닷없이 요구한다. 황거칠은 묻는다. ‘왜 이러한 아름다운 산들이 몇몇 사람들에게만 독차지돼야 하는가?’ 황거칠은 북녘이 고향인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넋을 모신 무덤을 수정산 산정에 만들어놓았다. ‘정신의 상징’으로 수정산 정상이 나오는 것이다. 두 분은 3·1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옥사한 이들이다. 그러니까 황거칠을 통해서 보는 수정산 정상은 우리 근현대사의 고난과 시련에 맞섰던 외로운 넋의 상징이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같은 정신의 산정이라고 할까.
수정산 정상은 마삿등에서 오르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 계속 긴가민가했던 ‘낙동강 하류가 멀리 내려다보인다’는 소설 구절을 산정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웠다. 요산이 이곳에 직접 올라 낙동강이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쓴 것이다. 장강의 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다는 것일 테다.
황거칠은 인간이 그리울 때나 어려운 고통을 당할 때 용기를 가지기 위해 산정의 무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옥사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넋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은 아니다.’ 산정의 정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부산작가회의 회장인 김요아킴 요산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부산 동구청이 나서서 수정산과 수정5동을 요산 문학 정신을 집약한 경구가 탄생한 장소로 기리길 바란다”고 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