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한국 축구대표팀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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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우승 자신하다 망신당한 한국 축구
지나친 국민적 인기와 대접이 화근

반면 부산세계탁구대회는 관심 저조
한쪽 쏠림 현상 심한 고질 다시 확인

혜택 독점 강자의 교만 경계해야
축구와 수도권이 지금 그런 존재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2023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망신당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표팀을 성원했던 국민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졌고, 이를 수습해야 할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일 처리 역시 실망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선임 1년 만에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채 이를 선수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나 이런 감독을 두둔하는 듯하다가 마지못해 손절매하듯 자른 축구협회의 우렁잇속 같은 조처도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였다.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의 승패야 그렇다고 쳐도, 중요한 시합 전날 화합은커녕 선후배 간 서로 핏대를 올리며 대거리한 일이나 이후 감독에게 몰려가 특정 선수의 출전 제외를 요구한 것 모두 하나같이 하극상의 관점에선 다를 바가 없다. 한 마디로 대표팀이 복마전 같다고 느끼게 할 만하다. 대표팀 내부의 추태는 국민들에게 한국 축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러한 추태는 대표팀에 쏟아지는 분에 넘치는 대접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스포츠 종목의 대표팀 가운데 축구대표팀이 누리는 국민적인 인기와 대접은 다른 종목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종목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하면 으레 ‘효자 종목’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효자 종목의 의미가 묘하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올림픽 때만 되면 많은 메달을 국가에 안겨 주고 대회 이후엔 다시 예전처럼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종목을 효자 종목으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실없는 사람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뒷맛이 씁쓸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만 진출하면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대표팀 선수들은 ‘영웅’이 된다. 그로부터 축구계와 대표팀의 특권 의식은 싹트고 점점 이런 대접을 당연한 양 여긴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림픽과 같은 종합 대회가 열릴 때마다 축구대표팀은 별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한국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전세기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유일한 예외가 축구대표팀이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다른 선수단과 함께 선수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내의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사용한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재정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재정이 넉넉한 만큼 다른 종목보다 여유롭게 이동하고 지내는 것이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종목의 선수라면 분명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이다. 태극 마크라도 같은 태극 마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종목에 따라 이처럼 보이지 않는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야 없겠으나 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방식은 이제 지양할 때도 됐다. 관심과 투자에 따라 인기가 들쭉날쭉하다고 해도 대표팀 선수들의 땀과 열정에 층차를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 현재 부산 벡스코에서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2024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중복된다. 그런데 씁쓸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탁구로서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이고 참여 선수도 40개국 2000명에 달한다. 관람객만도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 탁구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임에도 국내의 관심과 열기는 기대만큼 후끈하지 않다. 부산지역 외 다른 언론 매체에선 대회 소식조차 찾기 어렵다. 오히려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대표팀 일부 선수의 탁구 게임이 내분 폭발의 발단이 됐던 측면만 부각되면서 이번 탁구대회가 희화화의 소재가 되고 있으니 쓰린 입맛이 더 쓴 듯하다.

아무래도 축구가 아닌 탁구이다 보니 안팎에서 마이너 종목의 설움을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대회 개최지도 서울이 아닌 부산이어서 그런지 수도권 효과를 타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 싶다. 어느 분야든지 한쪽 쏠림 현상이 유달리 심한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이 스포츠 종목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단시간에 이런 고질이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포츠 종목이든 지역이든 그 분야에서 압도적인 인기나 비중을 누리는 쪽이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윤리의 측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지금 스포츠에서는 축구가 그런 존재이고 국가적으로는 수도권이 이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윤리·종교 사상에 자만 또는 교만을 뜻하는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버전으로 인용되고 있지만 요즘에는 자기 과신이나 오만으로 인해 스스로를 망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근래 우리나라 축구계나 수도권을 보고 있으면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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