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부산 기업 사보, 대중지성 유통망이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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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얼굴로 인식 40개 달해
편집자회 출범·사보의 날 지정
부산외대 박형준 교수 논문

1986년 창간되어 1997년 부도 직전까지 발행된 사보 <미화당> 표지와 내용.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제공 1986년 창간되어 1997년 부도 직전까지 발행된 사보 <미화당> 표지와 내용.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제공

40여 종에 달했던 1980년대 부산지역의 기업에서 발행된 ‘사보(社報)’는 지역의 출판과 잡지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며, 지역사회의 대중지성을 가꾸는 종합교양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지역 사보를 문화적 텍스트로 다루지 못한 상태에서 1997년 이후 기업 파산 및 경영 축소 과정을 맞으며 상당 부분 손·망실되어, 사보에 대한 관심과 문헌 갈무리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산외대 한국어교육전공 박형준 부교수는 학술지 <영주어문>에 게재한 ‘1980년대 부산지역 사보의 존재 양상과 산업 저널리즘’ 논문에서 미화당의 사보 <미화당>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 “당시의 사보는 대내적으로는 안정적인 기업문화를 가꾸는 데 기여했다. 대외적으로는 부산지역 산업 현장을 이해하고 기업과 시민이 교통할 수 있는 문화적 장을 만들었다. 또한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작품 발표 공간이자, 시민들의 대중지성을 정초(定礎)하는 매개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사보가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1958년 태평양화학이 창간한 <化粧界(화장계)>를 근대 사보의 효시로 꼽지만, 1952년 부산지역에서 발행된 조선방직주식회사의 <朝紡(조방)의 벗>이 이보다 앞선 것으로 드러난 사실만 봐도 그렇다. 1960년대에는 사보가 ‘기업의 얼굴’이자 ‘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많은 기업체에서 사보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 창립한 부산은행은 창사 이듬해인 1968년 사보 <부은뉴우스>를 창간했다. 1980년대에는 태화·미화당·세원 등 백화점 업계를 비롯해 화승·국제상사·대양고무 같은 신발업계 등 부산지역 기업에서 발행된 사보가 40여개에 달했다. 1980년대 후반 종이 소비가 크게 늘어난 요인 중 하나로 사보 발행 붐이 거론될 정도였다.

이 논문은 1986년 1월 24일 자 <부산일보>에 보도된 ‘부산에서 발간되고 있는 비교적 활발한 사보는 월간 또는 계간 등의 형태를 취하면서 한 회에 수천 부씩 발행하고 있다. 크고 작은 업체들의 이 같은 사보 발간은 사내 언론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기업문화의 정착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지역 기업임을 감안, 부산 특집을 연재 기획하는 경향이 높고, 필진도 가급적이면 부산지역에 국한시키는 것도 특징이다’는 기사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1980년대 부산지역 사보 발행업체의 수는 국내 전체 사보 현황과 비교하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사보편집자들의 열정과 역량은 지역 산업 저널리즘의 창안과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높게 평가된다. 부산지역 사보 편집자들은 1987년 기업과 부산상공회의소의 지원으로 부산사보편집자회를 출범하고 회보인 ‘釜編會報(부편회보)’를 발간했다. 또한 ‘사보의 날’을 날을 제정하고 사보편집자를 위한 실무강연, 세미나, 좌담회를 열었다. 사보는 이처럼 지역 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지역 기업에서 발간한 사보에 관한 문헌 조사와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다.

박 교수는 “부산지역의 사보는 새로운 형태의 종합교양지로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유통회로 역할을 했다. 따라서 1980년대 부산지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 기업 사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성이 있다. 후속 연구를 통해 부산지역 사보의 현황과 문화적 의의를 더욱 정교화하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남아 있는 지역 기업 사보는 대부분 웹진 형태로 바뀌었고, 지면 형태로는 BNK부산은행,화승, 태웅, 성우하이텍 정도만 발행하고 있다.


부산사보편집자회가 발행한 ‘釜編會報(부편회보). 박형준 교수 제공 부산사보편집자회가 발행한 ‘釜編會報(부편회보). 박형준 교수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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