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젠 녹색이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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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도시 녹지에 대한 관심 높아
싱가포르 그린 정책의 핵심은 ‘연결’
최근 부산시청 내 푸른도시국 신설
집 앞 작은 공원의 가치·소중함 알기를

산업혁명 이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과밀화로 도시 내 녹지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숲이라든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조성됐다. 그게 도심 속 자연이라는 개념의 ‘공원 같은 도시’였다면, 지금은 도심 속에 파편적으로 흩어진 숲과 숲, 공원과 공원을 이어주는 ‘도시 같은 공원’ 형태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도시 계획 역시 전통적인 도시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생태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된다. 부산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지난 4일 시청 내 푸른도시국이 신설돼 그 시작을 알렸다. '도시 속의 공원'에서 '공원 속의 도시 부산'으로 도시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공원이나 정원, 생태 도시·도시 숲 조성은 물론이고 기후변화 대응 등 향후 부산의 녹색 정책이 여기서 펼쳐질 예정이다. 바야흐로 ‘녹색 공간(그린 인프라)’이 도시 경쟁력이 되는 시대. 여기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부산이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헤엄쳐야 할까?


싱가포르, 길이 될까?

황폐한 농장, 썩고 오염된 강….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싱가포르의 모습이 이랬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싱가포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원 도시가 됐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녹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특이한 국가가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친환경 도시계획의 비전은 ‘정원 속 도시’다. 도시에 정원을 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자연으로 만들겠다는 녹색 도시에 대한 강한 비전을 담고 있다. 이는 도심 속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비롯해 보타닉 가든, 주얼창이공항 등에서 잘 느껴진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싱가포르 녹지정책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다. 시민들이 짧게는 250m, 멀어도 400m 안에 접근 가능한 공원이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실제로 싱가포르 포트 캐닝 파크 주변에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스타나, 워메모리얼, 에스플란데 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공원과 공원 사이는 연결(혹은 선형)녹지 형태의 그린웨이가 구축돼 있다. 그 주변으론 주거, 상업,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생태통로도 갖춰 생물의 종 다양성도 확보했다. 공원과 공원의 연결 외에도 녹색으로 뒤덮인 수직 고층 빌딩, 생태 중심 디자인 건축물 등은 정원 속 도시 싱가포르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다.

세계적인 추세 또한 녹지의 연결이다. 요컨대 뉴욕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100만 평이 넘는 대공원과 시민 생활권역 내 중소 공원들이 친환경 보행길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싱가포르나 뉴욕이 부산시가 추구하는 그린 인프라 방향의 정답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분명 힌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의 도심 속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인공 나무 ‘슈퍼트리’ 사이에 떠 있는 공중산책로 위를 걸으면 싱가포르 전체가 정원처럼 느껴진다. 부산일보DB 싱가포르의 도심 속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인공 나무 ‘슈퍼트리’ 사이에 떠 있는 공중산책로 위를 걸으면 싱가포르 전체가 정원처럼 느껴진다. 부산일보DB

‘녹지’가 왜?

싱가포르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일본 도쿄도 녹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롯폰기힐스, 미드타운, 아자부다이힐스는 도쿄의 주요 재개발 지역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첨단복합단지 아자부다이힐스는 중앙광장을 포함해 전체 부지 면적의 37%가 녹지다. 건물의 옥상 부분까지 녹색으로 덮여 있을 정도다. 옛 일본 방위청 자리에 2007년 들어선 초고층 복합상업단지 미드타운은 부지 면적의 40%가 녹지다. 이쯤 되면 ‘도심 속의 공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03년 콤팩트시티의 효시로 개발한 롯폰기힐스 역시 넓은 녹지와 문화 공간 등을 통해 매년 3000만~4000만 명이 찾는 도쿄의 명소가 됐다. 근래 도쿄를 관광하는 여행객들은 “무료했던 도시가 활기 넘쳐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 그 활기의 한가운데 바로 녹지가 있다. 도쿄의 고밀도 개발은 넓은 녹지 공간을 통해 경쟁력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도시 활력을 높이고 도시와 시민에게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다. 다만 초고층이기에 도시경관 훼손과 같은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도시의 70%가 녹지로 조성돼 유럽의 허파로 불리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버려진 공장을 수경 재배 농장으로 바꾼 영국의 뉴어크, 산업 부지를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한 독일 베를린처럼 자연이나 녹지와 함께할 길을 찾아낸 도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외국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전남 순천시는 일찍부터 생태와 정원이라는 가치를 품고 도약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처음 개최(2013년)할 당시에는 단순히 정원에만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정원박람회 때는 그 범위를 도심권, 국가정원, 순천만 습지 등 도시 전체로 확장했다. ‘도시가 정원이다’라는 박람회 캐치프레이즈는 순천시의 지향점이 어딘지를 말해 준다. 경북 포항시는 2016년부터 2021년 말까지 6년간 축구장 66개 규모인 47만여㎡의 도시 숲과 녹지 공간을 조성해 철강 산업 중심의 회색 산업도시를 지속 가능한 녹색 생태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찰스 몽고메리는 저서 <행복한 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 녹지는 건강한 주거 공간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라고.


과감할 정도로 친환경적 조경시설을 해놓은 일본 도쿄 미드타운의 모습. 미드타운은 부지 면적의 40%가 녹지로 되어 있다. 부산일보DB 과감할 정도로 친환경적 조경시설을 해놓은 일본 도쿄 미드타운의 모습. 미드타운은 부지 면적의 40%가 녹지로 되어 있다. 부산일보DB

그럼, 부산은 어디로

부산시는 푸른도시국 신설을 계기로 전국 최고의 공원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푸른도시국의 조직이나 최근의 부산시 행보를 보면 국가 정원에 너무 목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정원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골몰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엇보다 생활밀착형 녹지 확충,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도심 속 녹지 연결이나 그린웨이 조성도 국가 정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싱가포르 사례에서 보았듯이 도시에 1만 평짜리 공원 하나를 짓는 것보다 1000평짜리 공원 10개를 조성해 이를 연결하는 게 시민들에게는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40년 부산도시기본계획에도 나와 있듯이 ‘도시공원·녹지의 연결성 부족’ ‘조성된 공원의 비효율적 사용’ 등은 부산시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공원과 공원, 숲과 숲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녹지의 가치와 효율성이 더 높아진다.

부산에는 낙동강이 있지만 인접한 일부 시민을 제외하곤 걸어서 가기엔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언제든지 낙동강으로 갈 수 있는 녹지를 기반으로 한 보행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원이나 숲과 같은 녹지를 이용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녹지는 도시의 구색 갖추기가 아니라 녹지가 시민의 일상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산시가 구현하는 ‘15분 도시’도 시민 곁으로 성큼 다가올 수 있다. 현재 지역별로 파편화된 공원을 산림·하천·해안 축으로 연결하고, ‘15분 도시’와 발맞춰 어느 곳에서든 15분 안에 녹지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도시의 가치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연관이 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공원이나 녹지의 넓이와 직결된다. 그래서 1인당 공원 면적을 따지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단순히 아파트만 높게 쌓을 것이 아니라 녹지도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시 전문가들은 흔히 행복한 도시는 걷기 좋은 도시라 말한다. 걷기는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고, 보행길은 녹지와 연결된다. 사람이 걷는 곳은 상권이 활성화된다. 궁극적으로 걷기 좋은 도시라고 하면 ‘시민 건강-경제-도시 환경’이 한 축이 돼 향상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도시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어쩌면 향후 부산의 도시 경쟁력도 녹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와 자연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제 우리 손으로 뒤엎어 버리자.

‘미군 55보급창이 있던 곳은 인근 동천과 함께 하구 숲을 이루고, 경부선 철길이 지나다니던 곳에는 숲길이 이어진다. 북항에서부터 도심을 가로질러 낙동강까지 ‘녹지 회랑’이 이어지는 부산.’ 부산시가 그리는 2040년의 녹지 모습이다. ‘녹색 꿈’이 야무지게 영글기를 바란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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