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모든 기재가 징표인 '묘향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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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원&전준호 '묘향산관'

문경원&전준호 ‘묘향산관’의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문경원&전준호 ‘묘향산관’의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문경원&전준호 ‘묘향산관’의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문경원&전준호 ‘묘향산관’의 한 장면.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문경원 전준호의 ‘묘향산관’은 2014년 일본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2017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열린 기획전 ‘상상적 아시아’에 출품했던 길이가 16분이 넘는 예술영화이다. 주인공으로는 유명 배우인 고수와 한효주가 출연했다.

중국 한 도시의 북한식당으로 보이는 듯한 ‘묘향산관’이라는 곳에 들어선 남성들이 술을 마신다. 북한식당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익숙한 우리는 이런저런 징표를 보면서 북한식당으로 여긴다. 또한 여자 주인공이 말하는 언표를 들으면서도 북한식당으로 단정한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단속적인 대화에서도 남한의 예술가, 북한의 식당 종업원의 바람을 간파할 수 있다. 이들의 대화와 이들이 생각하는 장면이 섞이면서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교차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끝내 자신들에 대해 완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감상자는 다만 이 모든 사항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과 조명 그리고 주인공의 대화 속에 들어있는 징표로 이해해야 한다. 심지어 지금 보는 것은 세트장에서 찍은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주면서 영화 속 서사에 빠지지 않게 한다.

‘묘향산관’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과 주인공의 대화는 징표일 뿐이다. 무언가를 지칭하는 이 징표들을 감상자에게 제시하고, 그것을 각자가 해석하게 하는 친절하지 않은 수사법을 사용한 실험영화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의 디지털 혁명은 소수만이 만들 수 있었던 영상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무료로 제공되는 세상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다. 이런 현상으로 익숙하던 수사법에서 생소한 수사법을 보고 이해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이것마저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예술영화와 그렇지 않은 것과 어쩌면 대결을 벌이는 양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묘향산관’ 어디에도 남한, 북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직접적인 언표는 없다. 다만 감상자의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보는 것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예술영화, 이제는 해석까지 해야 이해되는 예술영화를 우리는 봐야 한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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