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7000년 삼나무와 원령공주 함께 사는 ‘생명과 치유의 섬’ [세상에이런여행]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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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3대 섬 (2) 야쿠시마>

오감 활용 여행 즐길 수 있는 신비한 장소
작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30주년
수령 7000년 조몬스기 등 천년 고목 즐비
‘모노노케 히메’ 영화 배경지로 더욱 인기

새벽부터 서둘러 9시간 걸어야 절경 관람
하트모양 이색 구멍 윌슨 그루터기에 감탄
조몬스기, 성인 10명 팔 잡아야 둘레 측정

흰색 포말 시냇물 흐르는 시라타니운스이
숲의 정령 야마히메 전설 곳곳 흐르는 듯
영화 같은 ‘이끼 숲’에선 너나없이 ‘찰칵’

일본 가고시마현에 야쿠시마라는 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20년 전인 2004년 이와사키호텔그룹에 입사해 서울사무소장을 맡은 이후였다. 입사 교육의 하나로 야쿠시마의 이와사키호텔을 견학하기 위해 가고시마시에서 고속선을 탄 게 섬에 첫발을 디딘 계기였다. 나는 첫눈에 인생의 사랑을 찾은 젊은이처럼 한눈에 야쿠시마의 매력에 반해버렸다. 이후 한국인 관광객을 인솔하거나,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촬영차 그곳에 가는 촬영감독, 배우를 안내하기 위해 섬을 방문한 게 수십 차례에 이르렀다.

일본 가고시마현 야쿠시마 섬을 상징하는 수령 7000년 삼나무 조몬스기 전경.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일본 가고시마현 야쿠시마 섬을 상징하는 수령 7000년 삼나무 조몬스기 전경.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의 매력은 오감을 활용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다 사용해야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먼저 초록의 이끼와 나뭇잎을 눈으로 보고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다. 숲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솟아나는 샘물의 맛을 본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삼나무를 만져본다. 나는 거기에 상상력을 추가한다. 그루터기를 보고 잘리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쓰러진 삼나무를 보고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나면 야쿠시마의 숲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야쿠시마를 ‘생명의 섬’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치유의 섬’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치유를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진 속 조몬스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인 10명이 손을 맞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사진 속 조몬스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인 10명이 손을 맞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30주년을 맞은 야쿠시마가 유명해진 계기는 두 가지다. 먼저 추정 수령 7200년의 삼나무 조몬스기다. 야쿠시마 사람들은 원래 섬의 깊은 숲을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 사냥꾼이 거대한 나무를 봤다며 놀라워했을 뿐 그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무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은밀히 숨어 있던 조몬스기가 발견된 것은 1966년이었다. 섬 주민이 카메라 풀샷으로도 찍을 수 없는 거대한 원시목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남일본신문’이 보도한 것이었다. 신문은 ‘신석기 시대에 싹을 피웠다’는 뜻에서 이 삼나무에 조몬스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몬은 BC 1만 4000년 무렵 일본의 선사시대를 의미하고 스기는 삼나무를 뜻한다. 신문 보도를 기점으로 야쿠시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야쿠시마를 더 유명하게 만든 두 번째 계기는 1997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였다. 작품 제작의 배경이 야쿠시마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제작진을 데리고 야쿠시마에 들어가 5박 6일간 지내기도 했다. 3년 뒤인 2027년이면 개봉 30주년을 맞는 영화 덕분에 야쿠시마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야쿠시마뿐 아니라 일본 규슈에서 최고봉인 미야로노우라다케.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뿐 아니라 일본 규슈에서 최고봉인 미야로노우라다케.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이제 본격적으로 야쿠시마에 들어가 보자. 야쿠시마에 가려면 가고시마에서 고속선을 이용해야 한다. 고속선 이름은 ‘토피’인데, 토피는 날치인 ‘토비우오’의 가고시마 방언이다. 야쿠시마 인근 바다에서는 날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고속선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야쿠시마 근처에 가면 언제든 배 옆을 날아가는 날치를 볼 수도 있다. ‘날치’를 타고 날치를 보는 셈이다.

야쿠시마에는 3대 트레킹 코스가 있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 야쿠스기랜드, 조몬스기 트레킹 코스다. 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3개 코스를 다 돌아봐야 한다. 그중에서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온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조몬스기 트레킹 코스의 시작점은 아라가와 등산로 입구다.

등산로 주차장이 작기 때문에 이곳에는 택시와 전세버스, 등산버스만 올라갈 수 있다. 야쿠스기자연관에서 출발하는 등산버스는 매년 3월 1일~11월 30일에 운영된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매일 오전 4시 40분, 5시, 5시 20분, 5시 40분, 6시에 출발한다.

아라가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면 먼저 아침식사로 도시락을 먹고 맨손체조를 한다. 이어 화장실을 이용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에는 9시간~9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아라가와 등산로에서는 먼저 삼림철도 위를 걷게 된다. 철길은 과거 삼나무를 벌채하고 운반하기 위해 설치됐다. 출발한 지 50분쯤 지나면 고스기다니 마을 터가 나온다. 삼림벌채가 성행하던 시기에 조성된 마을인데, 벌채가 중단돼 50년 전에 없어지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야쿠시마에 사람만큼이나 흔한 사슴 야쿠시카.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에 사람만큼이나 흔한 사슴 야쿠시카.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올라가는 도중에 운이 좋으면 원숭이나 사슴을 만날지도 모른다. 야쿠시마에는 ‘원숭이 2만 마리, 사슴 2만 마리, 사람 2만 명’이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숭이와 사슴이 흔하다. 일본어로 사슴을 시카라고 부르는데 야쿠시마 사슴은 야쿠시카라고 한다. 나는 등반 도중 야쿠시카를 만나기도 했다. 사슴은 사람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곤 했다.

고스기다니 마을 터에서 30분 정도 더 걸으면 바이오화장실이 나온다. 이후 중간 중간에 삼대스기, 인왕스기 등을 만나게 되고, 1시간 정도 더 걸으면 오오카부 보도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화장실이 있다. 여기서부터 조몬스기를 보고 내려올 때까지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여기서 ‘볼일’을 해결해야 한다.

오오카부 보도에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길이 힘든 대신 볼거리가 많아 산행의 피로를 달래준다. 밑동만 남은 오키나(할아버지)삼나무, 하트 사진으로 유명한 윌슨 그루터기, 그리고 대왕삼나무와 부부삼나무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하트형 구멍이 인상적인 윌슨 그루터기. ©Soramido Yakushima 하트형 구멍이 인상적인 윌슨 그루터기. ©Soramido Yakushima

수령 3000년으로 추정되는 윌슨 그루터기를 보는 순간 감탄이 터져 나온다. 둘레가 13m, 두께가 4m에 이르는 이 나무는 몸통은 없어지고 밑동, 즉 그루터기만 남았다. 나무의 속은 비어있기 때문에 큰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무 안은 시냇물이 흐를 정도로 넓어 어른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데, 위를 올려다보면 하트 모양 구멍이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청춘남녀에게 사진 촬영 포인트로 유명하다. 하트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윌슨이라는 영어 이름은 미국 식물학자인 어네스트 헨리 윌슨 때문에 생겼다. 그는 야쿠시마 식생을 조사하러 갔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려다 동굴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윌슨 그루터기였다.

윌슨 그루터기에서 조금 더 걸으면 마침내 목적지인 조몬스기가 나온다. 추정 수령이 7200년이라고 하지만 최근 과학적 방법을 통해 재어본 바로는 2170년 정도라고 한다. 어느 것이 맞든 인간의 기준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어보기 힘든 시간이다.

BC 1만 4000년 전 일본 선사시대에 싹을 피운 것으로 알려진 조몬스기.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BC 1만 4000년 전 일본 선사시대에 싹을 피운 것으로 알려진 조몬스기.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 삼나무 중 수령 1000년 이상인 나무를 야쿠스기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1000년 이하는 그냥 이름이 없는 ‘어린 나무’다. 삼나무 수명은 대개 500년인데, 야쿠시마에 유독 수령 1000년을 넘는 야쿠스기가 많은 것은 섬의 지질 때문이다. 영양이 빈약한 토양이어서 나무가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나이테가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삼나무는 벌레와 부패에 강한 특성을 갖게 됐다.

성인 10명 이상이 팔을 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다는 조몬스기는 많은 일본의 삼나무 중에서 가장 몸통이 굵다. 굵기에 비해 키가 작은데, 태풍이 상습적으로 통과하는 야쿠시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키가 큰 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의 많은 삼나무가 에도시대에 벌채됐지만 조몬스기는 표면이 울퉁불퉁해 이용가치가 낮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뿌리 손상을 막기 위해 나무 전망대가 만들어져 등산객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2005년 폭설 때 조몬스기의 큰 가지 하나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가지의 나이테를 측정했더니 1000년이 넘은 것으로 나왔다. 섬사람들은 부러진 가지를 버리지 않고 ‘생명의 가지’라는 이름을 붙여 야쿠스기 자연관에 ‘모셨다’.

야쿠시마에 가본 적이 없는 여러 사람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조몬스기가 정말 그렇게 감동적이냐고. 솔직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에게 달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의 이끼가 낀 바위와 나무 사이로 하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의 이끼가 낀 바위와 나무 사이로 하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다른 등산로인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은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지다. 이름 그대로 계곡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흰색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름의 뜻은 ‘하얀 골짜기와 구름, 물이 어우러진 계곡’이라는 뜻이다.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속의 계곡에 ‘푸르다’가 아니라 ‘하얗다’는 이름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 가면 이유를 알게 된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냇물이 흰색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은 왜 ‘하얗다’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게 해준다. 계곡을 오르다보면 미야자키 감독이 왜 이곳에 반했는지 이유도 알게 된다.

트레킹 코스는 60분을 걸어야 하는 야요이스기 코스, 3시간이 걸리는 부교스기 코스, 4시간이 소요되는 다이코이와 왕복코스로 나뉜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시라타니강의 맑은 물, 겹겹이 쌓인 바위, 깎아지른 계곡을 볼 수 있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면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나무의 정령 고다마와 사슴 신 시시가미가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의 주무대인 ‘고게무스모리(이끼 무성한 숲)’에 도착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연신 사진을 찍게 된다. 영화와 흡사한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의 이끼가 낀 야쿠스기 숲.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의 이끼가 낀 야쿠스기 숲.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고게무스모리를 지나다 보면 야쿠시마의 설화 ‘야마히메’가 떠오른다. 야마히메는 소녀의 모습을 한 숲의 정령이다. 야쿠시마 노인들은 옛날부터 아이들에게 “산속 깊은 곳에는 야마히메가 산단다. 머리는 방금 씻은 듯 윤기가 흐르고 뒤로 길게 흐르지. 음력 설날과 산신제 날에는 야마히메가 물을 길으러 내려온단다. 혹시 야마히메를 만나면 먼저 웃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를 다 빨아 먹혀 죽을지도 몰라”라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삼나무를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원령공주는 야쿠시마의 야마히메가 아닐까.’

쓰지 고개에서 마지막 구간인 다이코이와 바위까지는 급한 경사로이지만 올라가보는 게 좋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방이 탁 트인 멋진 전망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은 특히 초봄 강가에 핀 영산홍과 산철쭉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다이코이와 바위는 ‘큰 북’이라는 뜻인데, 바위를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영화에서 늑대엄마가 휴식하던 큰 바위로 묘사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영화를 보고 여기 오르는 사람도 많아졌고, 이곳에 오른 뒤 영화를 봤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늑대가 쉬던 바위로 등장한 다이코이와 바위.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늑대가 쉬던 바위로 등장한 다이코이와 바위.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제공

야쿠시마의 농부시인이며 구도자로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는 ‘신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야쿠시마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조몬스기를 볼 때마다, 야마히메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야마오가 생각한 신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

조현제 이와사키호텔 서울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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