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앞바다엔 매일 활화산 연기가 솟아난다 [세상에이런여행] ⑫
<가고시마 3대 섬 (3) 사쿠라지마·끝>
바다에 섬처럼 선 1만 4000년 된 화산
금세 터질 듯 매일 연기 뿜으며 “그르렁”
전망대 오르면 분화구 울림 들을 수 있어
기리시마국립공원 ‘한국악’ 가라쿠니다케
고대 가야 ‘가락국’에서 발음 음차 주장도
일본 <고서기>에는 ‘한국 향하는 곳’ 기록
화산이 분화했다는 외신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랄 때가 더러 있다. 일본에서도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화산이 있다. 바로 가고시마현의 사쿠라지마 활화산이다. 전 세계에 약 1500개의 활화산이 있는데 그중 110개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사쿠라지마는 바다에 섬처럼 자리를 잡은 덕분에 일본의 활화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
■사쿠라지마
가고시마에서 바다를 보면 늘 연기를 뿜어내는 산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사쿠라지마다. 어떤 날에는 실낱같은 연기가 올라오고, 좀 심한 날에는 금세라도 폭발할 듯이 굵은 연기가 나온다.
사쿠라지마는 기리시마금강만국립공원의 일부다. 이 국립공원은 거대 칼데라 화산이 남북으로 열을 지어 구성된 곳이다. 사쿠라지마는 공원 남부 지역인데, 북부 기리시마 지역에는 크고 작은 20개 이상의 화산이 이어져 기리시마 연산을 이룬다. 화산 활동과 더불어 탄생한 화구호, 온천, 고원 등과 함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경관이 많이 남아 있다.
가고시마시의 사쿠라지마 페리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15분 만에 사쿠라지마에 갈 수 있다. 페리는 사쿠라지마 주민의 대중교통수단이어서 하루 24시간 운행된다.
사쿠라지마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사쿠라지마 방문자센터가 손님을 맞아준다. 센터는 사쿠라지마의 분화와 성장의 역사, 식물의 천이 과정, 지역의 관광 정보와 방재활동 등을 소개한다. 대형 스크린과 영상 등을 통해 살아있는 사쿠라지마를 체감할 수 있다.
1946년 대폭발로 유출된 용암벌판의 작은 언덕에는 아리무라 용암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오르면 사쿠라지마 분화구와 금강만을 바로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 분화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분화구의 울림과 분화에 따른 폭발음을 들을 수도 있다.
사쿠라지마는 봉우리 높이 1117m, 면적 약 80㎢, 둘레 52km에 이르는 곳이다. 약 2만 6000년 전에 생성돼 17번이나 대분화를 반복했다. 사쿠라지마는 섬이면서 섬이 아니다. 과거에는 이름대로 바다 한가운데의 섬이었지만, 1914년 대분화 때 흘러내린 용암이 해협을 메꾸어 오늘날에는 육지와 연결됐기 때문이다.
사쿠라지마에서는 지금도 매일같이 작은 규모의 분화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활화산 주변에 사는 주민은 무려 5100명이나 된다. 화산 재해를 감수하면서 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화산이 가져다주는 여러 혜택 때문이다.
사쿠라지마 무, 사쿠라지마 귤 그리고 비파와 같은 농작물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의 피로를 씻어주는 풍부한 온천 그리고 산과 바다가 만들어 내는 자연경관이다. 사쿠라지마 주민들은 온난한 기후를 활용해 250년 전부터 비파를 재배해 왔다. 사쿠라지마 무는 세계에서 제일 큰 무로 알려졌다. 무게 31.1kg, 둘레 119cm의 무가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다.
올해는 사쿠라지마가 1914년 분화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지 110주년 되는 해다. 화산은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에너지와 플레이트의 움직임 탓에 활동을 계속한다. 사쿠라지마에 사는 5100명 외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활화산에서 불과 4km 거리에 인구 60만 명이 산다. 매일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는 가고시마 시민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지척에 활화산을 두고 살아가는지,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방인으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일본 소설가 미야오 도미코는 <덴쇼인 아쓰히메>라는 책에 ‘사쿠라지마는 기분이 좋은 날에는 담배 한 개비를 아주 기분 좋게 피우듯이 똑바로 연기를 내뿜을 뿐이지만, 조금 언짢을 때에는 비스듬히 피어오르고, 그리고 화를 내면 눈앞이 뿌옇게 될 정도로 재를 뿌리는데, 나는 지금 그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적었다. 사쿠라지마와 가고시마 사람들의 관계와 심정을 잘 담아낸 문장이다.
■가라쿠니다케
사쿠라지마까지 온 김에 기리시마에 안 가 볼 수 없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가라쿠니다케’로 발음되는 ‘한국악(韓国岳)’이다. 원래 일본어로 ‘한국’은 ‘강코쿠’인데 유독 ‘한국악’에서는 ‘가라쿠니’라고 발음한다.
사쿠라지마에서 기리시마로 이동할 때는 페리를 타지 않고 차량을 이용해 가면 된다. 기리시마는 화산활동으로 탄생한 화구호와 산정습원 등의 특색 있는 지형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풍부한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진달래과의 미야마기리시마가 선명한 분홍빛으로 산을 수놓는다. 가을에는 단풍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겨울에는 환상적인 상고대가 일품이다.
가장 먼저 갈 곳은 기리시마 에코뮤지엄센터다. 해발 1200m의 에비노고원에 위치한 시설이다. 이곳은 가라쿠니다케와 산악호수 자연탐방로를 비롯한 기리시마 연산의 등산거점이다. 패널과 영상을 이용해 기리시마의 자연을 소개한다. 상주 직원이 각 계절의 볼거리와 자연정보, 등산정보와 신모에다케 화산활동 등에 대해 안내한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기리시마국립공원에는 해발 1500m 전후의 산 23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 기리시마 연산(連山)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천손강림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는 다카치호(해발 1574m) 봉우리와 가라쿠니다케가 기리시마 연산에서 대표적인 산이다. 신기한 것은 해발 1700m인 가라쿠니다케가 일본건국신화가 깃든 봉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등산하기 전에 가라쿠니다케의 내력에 대해 알아보자. 가고시마국립공원 최고봉에 한국의 산을 뜻하는 가라쿠니다케라는 이름이 붙은 건 왜일까.
의문을 풀어가는 출발점은 일본 역사서 <고사기>다. 이 책에는 ‘이곳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아침 해가 비치는 나라.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 그러므로 여기는 좋은 나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한국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책 ‘규슈 편’에서 ‘신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는 대목’이면서 ‘한국과 연관이 있음이 천손강림은 단군신화와 비슷하고 또 가야 김수로왕의 7왕자 이야기와도 비슷하여 신화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고 썼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로는 <고사기>에 등장하는 한국은 가락국과 연관이 깊다고 한다. 한국을 가라쿠니라고 읽는데, 여기서 ‘가라’는 한반도의 남쪽 지방 김해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락국, 즉 가야의 ‘가락’을 음차한 말이라는 것이다.
기리시마의 가라쿠니다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만약 한국에 일본산이 있다면,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일본에 한국산이 있다는 걸 안 이후 나는 틈 날 때마다 한국산을 만나러 갔다.
조현제 이와사키호텔 서울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