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날아온 이웃사촌
특별기여자 157명 울산 정착
일방적 결정 주민과 갈등 겪다
이웃으로 맞이한 울산 이야기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김영화
어느날 갑자기 무슬림 이웃이 생긴다면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는 2021년 8월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구출한 특별기여자 가족 중 울산에 정착한 157명과 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위험에 처한 외국인을 인도적 차원에서 구출할 만큼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감동과 자부심은 잠깐이었다. 2022년 2월 아프간 난민이 이웃으로 온다는 사실이 발표되자 울산 동구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이 책의 1부는 아프칸인들이 울산에 오게 된 과정, 2부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3부는 일 년 뒤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벌써 일 년이 지났으니 성공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자는 현재진행 중인 고군분투로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이주민 자녀, 이주 반대 주민, 활동가, 울산시교육청 관계자, 통역사, 사회복지사, 전문가, 한국어강사, 이주민 부부, 다문화센터장 등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울산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라, 끊임없이 갈등하고 협상하는 불편한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울산은 어쩌면 이주민 없이는 지역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조선소 망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협력 업체에 소속된 인원 1만 명 중 1500여 명이 이주노동자다. 전에는 100명 규모 업체에 외국인 열 명이 들어오면 일자리 열 개를 빼앗겼다고 그랬다. 지금은 들어온 열 명이 아흔 명의 일자리를 지킨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계 어떤 나라도 난민 받아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미래는 이주민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현재 장단기 체류 외국인 비율이 4.89%로 OECD 다문화 국가 기준인 5%에 다가섰다. 이주민이 경제의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의 첫 등굣길을 동행했다. 정치인으로서 표를 잃을지도 모를 위험한 행동이었다. 다문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피하거나 침묵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깨닫게 됐다.
이슬람 하면 왠지 IS(이슬람국가)나 테러부터 먼저 떠오른다. 무슬림을 검색하면 테러, 피, 유혈 충돌 같은 기사가 줄줄이 뜨니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슬람은 전 세계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대한 문화권이다. 우리도 이슬람 문화에 대해 공부와 이해가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적응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적응해야 한다.
울산은 다문화 가정 자녀가 전교생의 10% 이상인 학교가 생길 정도로 다문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방 소멸과 고령화가 이주를 촉진하고 있다. 이미 난민 문제는 거부하고 싶다 해서 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지방은 서울보다 더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다.
울산의 사례에서 학부모들이 문제 삼은 것이 ‘소통 없는 행정’이었다는 대목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한국에는 난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 없다. 출입국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법무부의 이주민정책은 통합보다 체류와 정착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저출생과 인구절벽 문제가 심각한 만큼 이민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아프간 학생들이 일 년간 동고동락한 울산 서부초등학교의 졸업식에서 한국과 아프간 학생들은 서로 헤어지기 싫다며 아쉬워했다. “아프간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우리 세금을 낭비하는 것 같지만 달리 보면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세금을 내고, 어쩌면 내 연금도 내주지 않을까.” 한 울산 주민의 이야기에서 변화와 희망을 느끼게 된다. 울산은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경험했다. 김영화 지음/메멘토/256쪽/1만 7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