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세대가 우리의 미래죠” 나이듦을 활용하는 부산의 젊음들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을 가진 부산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부산의 고령화 속도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다. 2022년 기준 부산의 50세 이상 인구는 153만 2000명으로 전체의 46.5%를 차지했다. 둘 중 하나는 50세 이상인 ‘장노년’인셈. 203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부산의 젊은 스타트업들은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실버 세대가 우리의 미래”라며 최첨단 ICT 기술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산의 ‘노인 산업’을 고도화 시키고 있다.
■웨이어스에서 ‘놀고’
‘웨이어스’ 공태영(38) 대표는 5060세대에 미쳐있다. 웨이어스는 실버세대의 관심사에 기반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골프·재테크·여행·건강 등 5060세대가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선정, 오프라인 특강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한다. 공 대표는 “노인이라는 말을 쓰는 대신 ‘액티브중장년층’이라고 부른다”며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60세 이상 회원 중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공 대표가 파고든 지점도 이부분이다. 기존의 노인 일자리 알선 중심의 서비스는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 취미 등 관심사를 기준으로 ‘놀고 싶은’ 액티브중장년을 웨이어스에 모은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하고 6개월이 채 안돼 입소문을 타 회원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공 대표는 “과거의 노인들이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요즘은 은퇴 후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세대”라며 “수도권과 비교해 액티브중장년들이 즐길만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부산 등 지역은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지난달 웨이어스는 유튜브 구독자 17만 명을 자랑하는 최대룡 프로 골퍼를 초청해 ‘프라이빗 특강’을 진행했고 전 회차 매진시켰다. 주제부터 프로 선정까지 웨이어스에서 활동하는 액티브중장년층의 주도로 마련됐다. 공 대표는 “은퇴 전후 세대들은 고립되는 경향이 큰데, 웨이어스가 서로 공감하며 즐겁게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웨이어스의 올해 목표는 회원 수 5만명, 매출은 100억 원이다.
■어댑핏으로 ‘관리하고’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는 만성기저질환자를 위한 특수 헬스케어를 전문으로 하는 부산의 스타트업이다. 재활운동 센터인 ‘어댑핏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AI·모션센서 등 최신 ICT 기술이 도입된 ‘어댑핏플러스’라는 맞춤형 운동장비를 개발한 업체다. 모션센싱과 압력패드, 전자식 풀리시스템을 활용해 빅데이터에 기반해 내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운동처방을 내려주는 머신이다. 최신 기술이 도입된 최첨단 재활 센터인데 이곳을 찾는 전체 회원의 50%는 실버 세대다. 정고운(39) 대표는 “운동을 하러 온 실버 세대들은 센터를 찾으며, ‘약먹으러 왔다’라고 말한다”며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운동 욕구가 가장 높은 세대가 바로 실버 세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시설, 좋은 프로그램으로 운동하려는 요즘 실버 세대들의 욕구는 MZ 세대 못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로당 같은 기존의 노인센터들이 ‘요즘 노인’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다. 실버회원들이 늘다보니 ‘시니어 트레이너’도 따로 모집할 계획이다.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관련 산업이 성장하자 새로운 직업군까지 창출되는 셈이다. 정 대표는 “시니어 트레이너들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감과 소통”이라며 “인생 2막을 운동과 함께할 역량있는 시니어 트레이너를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헬퍼잇으로 ‘돈 벌고’
즐기며 관리하며 주체적으로 살고 있지만, 경제적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실버 세대의 욕구도 크다. 은퇴한 실버세대가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초단기 일거리매칭 플랫폼 ‘헬퍼잇’은 실버세대의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헬퍼잇을 운영하는 ‘불타는고구마’ 최석현 대표는 “긱 노동의 시대, 실버세대가 그들의 특성을 활용해 새로운 노동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며 “헬퍼잇을 통해 레지던스 등 숙박시설 청소 전문 ‘헬퍼’로 30여 명의 시니어들이 팀을 이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입하는 시간과 능력으로 일당을 받아가는 만큼, 숙박시설 청소로만 월 수입이 300만 원을 넘긴 헬퍼도 있다. 특히 불타는고구마는 부산의 대단지 생활형 숙박시설과 협약을 맺어, 안정적이며 고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최 대표는 “숙박시설뿐만 아니라 상가, 병원 등 시니어들이 활동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시니어의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노노돌봄’ 전문 플랫폼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병원 동행, 목욕 관리 등 실버세대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서 시니어 헬퍼가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최 대표는 “심부름을 의뢰하는 자식 세대들이 시니어 헬퍼가 매칭되면 더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령화 시대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산업은 실버 산업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