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보호” vs “생활 피해”… 길고양이 급식소 두고 민원 충돌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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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부산시 조례 개정 통해
공공 급식소 125개로 늘어나

고양이 몰리며 소음·벌레 민원
일부 지자체 자진 철거 나서자
“밥 주는데 행정 왜 방해” 반발
중성화 병행 조건 등 중재 필요

부산 남구 한 아파트 입구 화단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부산일보DB 부산 남구 한 아파트 입구 화단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부산일보DB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주민 간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양측 민원에 시달리는 지자체도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물단체에서는 행정당국이 적극 나서 중재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부산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부산 지역에 설치된 공공 길고양이 급식소는 모두 125개다. 부산시가 급식소 제작과 설치를 지원하는 곳으로, 시설물 옆에는 부산시가 설치한 시설물임을 안내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시는 2022년 4월 ‘부산광역시 동물 보호 및 복지에 관한 조례’ 일부를 개정했다. 길고양이 급식소, 화장실 등의 설치와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었다. 시는 길고양이의 효율적 관리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 조성을 위해 해당 시설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 노력과 달리 일상 공간에서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 보호를 강조하는 주민과 소음 등 생활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생각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기초지자체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고 충돌하는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구청은 지난달 30일 남구 A 공원 내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해 자진 철거를 명령하고 철거 요청문을 부착했다. 해당 급식소가 무단 적치물인 데다 급식소에 대한 불만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쪽 주민의 민원이 시작됐다. 자신이 길고양이 밥을 준다고 밝힌 한 주민은 남구청 전자민원창구에 글을 올려 “공원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왜 행정이 방해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남구청은 최근 다시 입장을 바꿔 자진 철거 요청문을 회수하고, 길고양이 급식소를 일부 남겨 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남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밥을 주는 민원인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자비를 들여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는 등 개체 수 관리와 주변 환경 관리를 잘 이행하고 있었다”며 “무조건 철거가 답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번 일 외에도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상충하는 민원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 급식을 반대한다는 김 모(48·수영구) 씨는 “밥 주는 곳에 길고양이가 몰리게 되면 밤마다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날 수 있다. 고양이 사료 때문에 벌레가 꼬이거나 비둘기가 모이기도 한다”고 말했다.동물보호단체는 생명 존중 차원에서 길고양이 급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도 주변 청결 유지나 중성화 수술 등 지켜야 할 수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고양이를 없애는 것은 불가하다. 급식소를 치워도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어서 그 자리에 계속 있다”며 “중성화를 병행한다는 조건으로 급식소를 운영하면 개체 조절도 가능하고, 발정기의 고양이 울음 소리도 없앨 수 있다. 지자체도 주민 갈등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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