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동네친화적 노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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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거권역의 가치를 표현하는 부동산 속어가 있다. 교통 좋은 역세권, 녹지 옆의 숲세권, 직장과 가까운 직주근접권, 삼성기업이 집중된 삼세권,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인 초품아, 스타벅스가 있는 스세권, 슬리퍼차림으로 이용할 편의점 및 쇼핑몰 등 편의시설이 갖춰진 슬세권, 병원이 인접한 병세권 등이다.

고령화 지진을 겪을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어떤 거주지역이 인기가 있을까? 연속적 돌봄의 은퇴자 동네(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CCRC)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 노인법에서는 노인의 일상생활 기능을 고려하여 독립생활, 지원 필요 생활, 전문간호생활, 병동생활 등으로 나누고, 이런 것들이 나이 들며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한 동네 안에 노인 독립주택단지, 식사 및 간호지원 주택, 요양원, 요양병원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있다. 생애계획을 고려한 이러한 CCRC 단지 수는 미국 내 2000개가 훌쩍 넘는다. 미국 내 CCRC에 입주하려면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표준적 공적연금 생활자도 입주할 수 있도록 아예 ‘일본판 CCRC’라는 정책을 만들었다. 보다 건강할 때 복잡한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다양한 세대가 서로 어우러져 교류하고 정착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주거단지, 단독주택, 아파트 등을 조성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분산, 고령화 대처, 지역활성화를 동시에 고려한다는 점에서 일본판 CCRC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정책에서도 이미 ‘Aging In Place(정든 곳에서 계속 살기·AIP)’에 주목하고는 있다. 이 개념은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노인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노화연구원 등에서는 AIP를 ‘나이, 소득, 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자신의 집과 동네에서 안전하고 독립적이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며 각종 정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 내 노인국과 장애인국을 동네생활실(Administration for Community Living) 밑에 두고 있는데, 그 취지는 노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동네에서의 삶이 제대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동네’에서 노인의 삶이 충족돼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실시하지만 동네단위에 장기요양체제를 갖춘다는 개념 자체가 부재하다. 일본이 지역포괄지원센터를 동네단위별로 둬 기초자치단체가 질 높은 동네맞춤형 노인돌봄서비스를 시행한 지 오래된 것과 대비가 된다. 부산시가 호기롭게 시작한 15분 도시정책은 아직 동네 복지의 서비스로 다가오지는 않고 있다. ‘동네의 복지권’이 지켜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삶을 지키는 선진적 복지국가와 도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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