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정 갈등 국면에도 지역의사제 도입 준비 속도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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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과 별개로 추진할 수 있어
졸업 후 근무 기관 등 구체화 필요

의대정원 및 의료개혁 시민사회토론회가 21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의대정원 및 의료개혁 시민사회토론회가 21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의·정 대치를 풀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젠 이마저 사라진 상황이다. 양측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조차 없다. 오히려 의료계는 사법부의 판단에 반발하며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진료 현장을 이탈한 상당수 전공의는 복귀 시한을 넘어서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의·정 갈등이 지속하면서 의료 체계는 물론 학사 운영에까지 차질이 우려될 정도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의료 체계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고민은 지속돼야 한다. 그게 의료 붕괴를 지켜보는 국민의 당부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필수의료 확충은 시급하다. 이에 정부는 의대 증원과 별개로 추진할 수 있는 지역의사제 도입과 준비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의대생 증원만으로는 지역의료 생태계 회복의 근본 치유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의사제는 의대·치과대·한의대의 신입생 일부를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의사로 키워, 졸업 후 10년 동안 인력이 부족한 지역 의료기관 등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극심한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지역의사제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공공의대 등 필수의료 도입 논의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추진돼야 할 정책이다.

지난 3월 경상국립대는 국내 최초로 내년에 지역의사전형 신설을 추진해 의대 졸업 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의사 양성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현행 의료법 등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경상대는 의사 면허 조건 등 현행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므로 당장 내년도 지역의사전형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해 21일 대학 학무회의에서 심의한 ‘2025학년도 모집 단위 변경안’에 지역의사전형을 포함하지 않았다. 지역의료의 맹점으로 꼽혀 온 수도권 유출과 의료 인력 부족을 개선하려는 경상대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 법 개정이 안 돼 꺾인 건 너무나 안타깝다.

단순히 의대생 수만 늘린다고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가 실현될 순 없다. 지역의사제를 통해 의사로서의 소명 의식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면 수도권과의 극심한 의료 불균형은 해소될 수 있다. 경상대의 내년도 지역의사전형 도입은 무산됐지만, 2026학년도엔 시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나서서 꼼꼼히 챙겨야 한다. 지역의사제는 의대 증원과 별개로 추진할 수 있고, 공공의대처럼 새로운 대학을 세우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제도다. 의·정 갈등과 무관하게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단 얘기다. 열악한 지역의료 여건을 고려해 지역의사 전공 과목 배분, 학생 선발 방식, 졸업 후 근무 기관 등도 지금부터 구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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