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에도 ‘혼인 무효’ 가능… 대법원, 40년 만에 판례 변경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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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40년간 이어온 '혼인 무효'에 관한 판례를 변경할지가 쟁점이 된 사건을 비롯한 3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날 선고된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40년간 이어온 '혼인 무효'에 관한 판례를 변경할지가 쟁점이 된 사건을 비롯한 3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날 선고된다. 연합뉴스

이혼 후에 당사자 간에 실질적인 합의가 없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릴 법률상의 이익이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40년 만에 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3일 A 씨가 전 남편 B 씨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A 씨는 2001년 12월 B 씨와 결혼했다가 2004년 10월 이혼했다. 이후 2019년에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 신고를 했다”며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청구했다.

1심은 “소 제기의 이익이 없다”며 A 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을 경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결정이다. A 씨는 항소했지만 2심은 항소를 기각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1984년 2월 “여성인 청구인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돼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며 “이혼 신고로 해소된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 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40년 만에 판례를 변경했다. 단순히 이혼만 했다면 인척 관계는 유지되므로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데, 혼인 자체를 무효로 돌린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4촌 내 인척이나 배우자 간에 발생한 재산 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한 형법상 ‘친족상도례’ 제도, 가사와 관련된 빚에 대해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일상가사채무’의 적용도 받지 않게 된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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