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집주인 허위 서류 못 걸러낸 HUG에 전세 피해 배상 책임"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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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소송 제기 전세사기 피해자
HUG에게서 배상 받을 길 열릴 듯
타 피해자 판결에도 영향 가능성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 2월 부산 남구 주택도시보증공사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부산일보DB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난 2월 부산 남구 주택도시보증공사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부산일보DB

허위 서류를 걸러내지 못한 책임이 있는데도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발급된 임대보증금 보증을 뒤늦게 취소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해당 건물에서 일어난 전세 피해(부산일보 2023년 9월 7일 자 2면 등 보도)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6단독 최지경 판사는 부산 수영구 한 오피스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정 모(33) 씨가 HUG와 임대인 40대 남성 A 씨에게 제기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이 판결에 따라 HUG와 A 씨는 정 씨에게 1억 45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 해당 오피스텔은 민간임대주택으로 HUG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특약사항으로 다수의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A 씨는 보증계약 신청 당시 오피스텔의 부채 비율 보증 요건을 맞추기 위해 다른 호실의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해 HUG에 제출했다. HUG는 이를 뒤늦게 발견, 지난해 8월 30일 보증보험을 취소했다.

법원은 정 씨가 HUG 보증보험을 신뢰해 임대차계약을 맺고, 갱신했기 때문에 HUG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A 씨의 허위 서류로 인해 보증보험이 취소됐다 하더라도 HUG를 믿고 계약을 체결한 정 씨를 HUG가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따라서 HUG가 취소 전 체결한 보증보험에 따라 정 씨에게 보증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HUG의 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보증보험을 취소당하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들이 HUG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보증보험을 취소당한 76세대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13개 그룹으로 나눠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HUG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추후 판결에서도 HUG의 책임이 인정된다면 HUG는 전세금을 보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

HUG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지도 주목된다. HUG 관계자는 “소송 판결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향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들은 HUG가 항소할 경우 법적 공방이 길어지는 만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는 시기도 늦어질 것을 우려했다. 정 씨는 “HUG가 허위 서류만 잘 걸러내 보증보험을 발급하지 않았다면 전세 계약을 연장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공공기관인 HUG가 자신들의 실수를 임대주택 세입자들에게 돌리려 항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부장판사 이범용)은 29일 사기, 사문서위조 등 행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공판기일에서 추가 기소 건을 병합한다고 밝혔다. A 씨는 2021년 5월 7일 한 법인 사무실에서 깡통전세로 임대차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줄 수 없음에도 보증금 명목으로 9억 8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A 씨가 2019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149명으로부터 임대차 보증금 명목으로 183억 6550만 원을 가로챘다는 혐의 외에 추가 범행을 한 사실이 새로 드러난 것이다. A 씨 측은 이 같은 혐의에 대해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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