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제철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제는 매듭지어야
“피해자 원고에게 1억 원 지급하라”
일본, 과오 직시하고 태도 바꿔야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부정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관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 만료로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부는 22일 사망한 강제노역 피해자 정 모 씨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총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깬 것이다. 정 씨는 생전에 1940∼1942년 일본 이와테현 제철소에 강제동원돼 피해를 봤다고 진술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은 2019년 4월 2억여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당초 1심 법원은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며 파기환송 판결했던 2012년을 ‘소멸시효’ 기준으로 보고,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2018년 10월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최근 이처럼 일본 기업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2018년 이후 피해자 및 유족이 청구한 60여 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일제의 식민 지배와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전제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과 일본 정부는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에 순리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국민과 정부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태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는 모양새다. 해결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게 비상식량을 납품했던 독일 유명 제과업체 발젠이 22일 “폴란드·우크라이나에서 강제동원된 노동자 수백 명을 공장에 투입해 차별했다. 괴로운 진실을 더 일찍 직시하지 못해 후회한다”라고 고백한 사례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만약 ‘보복 조치’ 등을 되뇐다면, 일본의 국격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가해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 법원은 2심에서 배상이 확정된 만큼, 강제집행을 위해 필요한 자산 매각 명령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적 손실을 감당했던 윤석열 정권도 이제 일본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굳건한 한일 관계는 상호 신뢰와 진심 위에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과오를 외면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일관하는 일본에 국민적 반감이 증폭되면, 미래를 향한 관계는 만들 수 없다. 북중러 핵 군사동맹 움직임과 미중 경제전쟁 등 동북아 안보와 경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갈등이 확대되면, 한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세마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파국을 막기 위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태도 변화를 거듭 촉구한다. 이제 일본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