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현실의 전투, 공허한 은유에 대한 흔적
■최대진 '날 집에 데려가지 말아줘'
최대진 작가가 작품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이자 동시에 전 세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분쟁과 전쟁, 그로 인한 폭력의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에서 15년간 거주하는 동안 시작된 작품 활동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슈들을 담아내고 있다. 세계 대서사 속에서 빗겨 난 전쟁과 사건 속 익명의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거나, 관련한 기사와 다큐멘터리 등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단순히 폭력 자체를 드러내기보다 무언가를 위무하고 기억하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최대진 작가는 종종 선언적인 문장과 파편적인 장면을 함께 병치하곤 한다. 특히 작가는 목탄과 먹을 즐겨 사용하며 흑백의 대형 드로잉을 선보이거나 사운드 설치 작품 등을 전시해 왔다.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날 집에 데려가지 말아줘’는 종이에 먹과 목탄으로 그린 20점의 드로잉 연작이다. 이 작품 제목은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이 본국 송환 절차에서 받았던 질문에 ‘남한과 북한 어디로도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고 말한 답변이다. 미군 심사관에게 말한 말, “Don’t take me home”이라는 문장을 드로잉에 그대로 그려 넣었다. 최대진 작가는 이 문장을 전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화두로 설정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인 목탄은 작가의 손가락과 손바닥의 힘을 통해 대담하고 강렬한 획을 표현할 수 있으나 재료 특성상 가루 날림으로 쉬이 지워질 수도 있다. 잘못 힘을 가하면 부러지기 쉬운 연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목탄은, 반대로 그 흔적이 지면에 스며들면 희미해질지언정 그 흔적은 없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포착한 순간적이고 휘발적이며 역사적 순간들은 희미해 보이나 유령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 처럼 말이다. 그의 드로잉 속 번지고 흘러내리면서도 짙은 경계들은 미술이, 혹은 예술가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어떻게 접촉하고 흔적 남기는지 말하는 듯하다.
최대진 작가의 대형 드로잉 신작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는 부산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전시실 로비에서 마주 할 수 있다. 더불어 전시실 내부에 숨겨진 듯한 공간에서 사운드 설치 작품 ‘김추자 메들리 No. 2’를 10월 20일 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막을 내리기 전 방문해 보길 권한다.
참고로 이 글의 제목인 ‘현실의 전투, 공허한 은유에 대한 흔적’은 최대진 작가와 이야기했던 수전 손택의 에세이 〈타인의 고통〉의 소제목에서 가져왔다.
김소슬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