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약계층 노동자 눈물 닦아주는 공무원 되어야” 부산동부고용노동지청 우행석 근로감독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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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간 고용노동부서 한 우물
‘근로감독관이 들려주는…’출간
체불 고통 해소엔 확약서 중요
사업주, 직장 내 갑질 줄여야

38년간 고용노동부에서 한 우물을 판 부산동부고용노동지청 우행석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관이 들려주는 노동이야기>를 출간했다. 정종회 기자 jjh@ 38년간 고용노동부에서 한 우물을 판 부산동부고용노동지청 우행석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관이 들려주는 노동이야기>를 출간했다. 정종회 기자 jjh@

“38년간 고용노동부에서 한 우물을 팠다. 미력하나마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한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근로감독관이 들려주는 노동이야기〉를 펴낸 부산동부고용노동지청 우행석 근로감독관의 말이다. 우 근로감독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6년에 공무원이 되어 지난달로 만 38년째 근무하고 있다. 공무원 경력으로 본다면 전국 최고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근로감독관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부터가 궁금해진다. 우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의 위반죄에 대해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임금 체불 등 각종 민원의 권리 구제와 근로조건이 취약한 사업장의 현장 감독을 통해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개선지도하는 업무를 한다. 노사관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임금 및 단체교섭을 지도하는 업무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방영했던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난다. 주인공 조장풍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발령 난 뒤 갑질 악덕 사업주 응징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통쾌한 드라마였다. 그는 “드라마는 시원한 사이다 같았지만, 누구도 조장풍처럼 마음대로 노동법을 휘두를 수 없다. 근로감독관은 항상 민원으로 긴장하고, 사건 해결을 위한 스트레스에도 많이 시달리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만약 우 근로감독관이 비슷한 드라마를 집필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가 궁금해졌다. 그는 “자동차 정비 공장에서 오로지 사장만 믿고 일 년간 월급 한 푼 못 가져간 분의 손에 묻은 기름때도 생각이 난다. 우리 사회에는 수입이 알바생에도 못 미치는 영세 소규모 사업주도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근로감독관들이 따뜻한 가슴으로 노사를 아우르는 사연과 애환을 그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 근로감독관 생활 중에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로 경남의 한 축사에서 50대 지적장애인을 데려다 매질 등 폭행하며 10년 동안 노동을 시킨 뒤 임금조차 주지 않았던 사건을 해결한 것을 꼽았다. 그는 “축사 주인이 막았지만 근로감독관 증을 보이고 노동관계법 위반 소지가 있거나 우려가 되는 곳은 불시에 점검할 자격이 있다”며 밀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8000만 원의 체임을 돌려받고, 장애인 쉼터에서 생활하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우 근로감독관은 임금체불로 인한 고통을 줄일 팁을 알려 줬다. 그는 “퇴직 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사업주가 언제까지 밀린 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지급 증서나 지급 확약서를 받아두는 게 중요하다. 준다는 말만 믿고 시간이 흐르면 증거를 찾는 게 어렵다. 그리고 요즘에는 다 쓰게 되어 있는 근로계약서를 나중에 증거로 제시할 수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요즘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노동청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느는 추세다. 우 근로감독관은 민원인들은 주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녹음해서 증거로 제시하지만, 그 배경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하고, 직장 질서에 따라야 하고, 정당한 업무 지시는 준수해야 한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업무 능력이 다 차이가 있으니 그런 걸 잘 살펴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대한다면 직장 내 갑질 문화를 줄일 수 있다”라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는 끝으로 “노동청에 찾아오는 민원인들은 형편이 힘든 분들이 많다. 많은 민원으로 인한 격무에 힘이 들지만 후배들이 이들 취약 계층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그런 근로감독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답도 기다리고 있다. 답은 시간일 수도, 바로 옆에 앉은 동료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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