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한 달 새 5% 급락…환율 1500원 시대 열리나
정치 불안에 흔들리는 원화
수출·내수 부진 속…달러도 강세
“조만간 1500원 돌파 가능성”
원화가치가 한 달 새 5% 급락하면서 환율이 금융위기 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 속에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국내 정국 불안까지 더해진 여파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등과 맞물려 조만간 환율이 1500원을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27일 장중 1386.7원까지 고점을 높였고 1470.5원(야간 거래 마감 기준)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480원대 후반까지 뛴 것은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환율은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 승리가 확정된 지난 11월 6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1400원 선을 돌파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고점을 높여왔다. 환율은 미 대선 전후로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가 나타나면서 빠르게 상승했다.
특히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내수 부진이 계속되고 우리 경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마저 3분기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성장 전망이 어두워진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2기 무역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감에 원화는 더 약세였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 불안까지 더해졌다. 11월 말 1400원 선 부근에서 등락하던 환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야간 거래에서 순식간에 1442.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지난 19일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 전망치를 상향하자 1450원대로 뛰어올랐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탄핵당한 27일에는 1480원대로 올라섰다.
이달 원화 가치 절하 폭은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일본 엔화 다음으로 가장 컸다. 27일 야간 거래 종가(1470.5원) 기준으로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1월 말(1396.5원)과 비교해 5.03% 하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1.48%), 파운드(-1.29%), 스위스프랑(-2.42%), 호주달러(-4.72%), 캐나다달러(-2.88%), 역외 위안(-0.70%), 대만달러(-0.93%)보다 훨씬 컸다. 원화보다 가치 절하 폭이 큰 통화는 일본 엔화(-5.23%)뿐이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단기적으로 1500원대로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NH농협은행 전권식 FX파생전문위원은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재료가 딱히 없어서 1500원선으로 갈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박형중 이코노미스트 역시 “국내 거시경제 불안, 트럼프 무역정책에 대응할 리더십 부재, 투자자의 원화 자산 회피 등을 고려하면 환율 상승 압력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내년 원달러 환율의 뉴노멀은 1500원이 될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 주식자금은 약 3조 원, 채권자금은 2조 2000억 원 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계엄 사태 영향이라기보다는 기존 유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면서도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실물경제가 영향을 받으면서 펀더멘털과 투자자 신뢰가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