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성역이 된 경호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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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警護)’라는 말 언저리에는 대체로 ‘삼엄함’이라는 언외의 느낌도 들러붙는다. 다른 사람의 임의적인 접근을 막고 대중과 일정한 격리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경호인 만큼 장삼이사에겐 “잡인들은 물렀거라”의 소리로 들린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차이는 있어도 벽제(辟除)의 분위기를 풍길 수밖에 없는 경호는 그래서 일반인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권력이나 돈 중 하나라도 특출해야 누릴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경호는 최고 권력자의 가장 빛나는 장신구다. 경호 인력으로 둘러싸인 모습 자체가 바로 최고 권력자의 상징이다. 경호 책임자는 권력의 이런 상징을 관리한다. 그런데 종종 그 권한과 범위를 넘어서면서 문제가 생긴다. 박정희 유신정권 때의 차지철, 전두환 군사정권 때의 장세동 경호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껏 회자한다.

얼굴에서부터 강골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차지철은 1974년부터 10·26 사태 때까지 경호실장으로 유신정권 종말의 방아쇠를 당긴 장본인이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 날, 육영수 여사의 피격 사건 이후 ‘피스톨 박’ 박종규의 후임으로 실장이 된 차지철은 대통령의 총애를 믿고 군 지휘 체계는 물론 비서실 업무까지 개입했다. 끝내 자기 국량에 넘치는 권력의 칼을 휘두르다 자기는 물론 모시던 상관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장세동 실장 역시 5공의 이인자로 불릴 만큼 위세가 막강했다. 그의 경호는 ‘심기 경호’라는 말로 압축된다. 물리적인 신체는 물론 대통령의 평소 기분, 즉 심기까지 경호의 영역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호는 대통령 직위에 대한 존중보다는 대통령 개인을 성역으로 여긴 맹목적인 추수로, 이마저 자기 지위 또는 권력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무가내로 막아선 대통령 경호처의 행태는 어떨까. 대통령 체포를 막으려는 무작정의 항거에 외국 언론들은 혀를 끌끌 찼다. 안으로는 법치의 붕괴, 경호처 해체, 대통령의 사병 등 가시 돋친 말들이 횡행한다. 국민들은 국가 법치의 원리를 몰각한 채 대통령 개인만 성역으로 여기는 단세포적 경호를 오히려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다. 명령에 따른 소임, 직업 정신이라는 말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아무리 성벽 같은 경호벽을 쌓아도 국민을 등진다면 한갓 백지장에 불과한 것을….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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