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랫포칼립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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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테러, 감염병까지 겹치며 인류는 8분의 1로 줄어들었다. 황폐해진 세계, 붕괴된 시스템 속 도시는 쓰레기로 가득하고 쥐들이 활개친다. 뉴욕에는 4만 명의 인간이 고층 빌딩에 숨어 살고 있다. 쥐를 피해 이곳으로 숨은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행성〉의 내용이다. 전쟁과 기후변화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쥐들이 득세하는 상황 속에서 고양이가 이끄는 최후의 무리가 쥐 떼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쥐의 번식력은 놀랍다. 임신 기간은 21일로 한 번에 6~9마리를 낳고 1년에 6~7번 출산한다. 출산 후 며칠 만에 다시 임신이 가능하다. 쥐 전문 연구기관 렌토킬은 쥐 2마리가 번식을 통해 3년 동안 4억 8200만 마리로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도시는 쥐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음식물과 숨을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는 건물 파손, 보건 위생 악화, 질병 전파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쥐 배설물을 통해 전염된 세균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쥐 떼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을 쥐(Rat)와 대재앙을 뜻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를 결합해 ‘랫포칼립스(Ratpocalypse)’라고 표현했다.

전쟁과 기후변화로 황폐해지는 지구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도시 쥐가 급증해 세계 주요 도시들이 쥐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 시장은 7~8년 전부터 쥐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다. 워싱턴DC는 2017년부터 길고양이를 활용해 쥐를 잡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도쿄시는 시내 편의점 등에서 쥐들이 기승을 부리자 3500만 엔을 투입해 쥐 떼 박멸에 나선 적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세계 주요 도시에서 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향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됐다. 연구는 미국 도시 13곳과 일본 도쿄 등 총 16곳이었다. 이 중 최근 10년간 쥐가 가장 많이 늘어난 도시는 워싱턴DC로 390%나 증가했다. 쥐의 기승은 기온 상승과 인구 증가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녹지공간이 적은 도시일수록 쥐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베르베르는 “지구온난화 등 인류가 지금 저지르는 실수의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며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고 가장 큰 가치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쥐 떼의 습격은 인간의 무절제와 탐욕이 불러온 재앙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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