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로 슈거'의 배신
인류는 달콤함에 취약하다. 그건 본능에 가깝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설탕은 코카인 같은 마약과 비슷한, 혹은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다한 섭취량이 인류의 건강을 옥죄기 시작했다. 설탕은 이제 당뇨, 비만, 노화 등 각종 질병의 주범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설탕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비롯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설탕을 대체할 감미료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마찬가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제로 슈거’ 제품은 이를 활용한 것이다. 칼로리를 줄이고 혈당 지수를 최소화하며 식단의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점을 어필한다.
‘제로 슈거’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시중에 나오는 제품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 제품보다 설탕의 양을 줄인 ‘저당’ 제품이 있고, 설탕이 들어 있지 않거나 현저히 적은 ‘무설탕’(무당·제로 슈거) 제품이 있다. 설탕은 물론이고 설탕을 대체하는 과일 농축액 등의 첨가당도 넣지 않은 게 ‘무가당’(설탕 무첨가) 제품이다. 각각의 차이를 알고 구매하기 전에 성분표를 확인하는 게 좋다.
문제는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다. 저당, 무설탕, 무가당 제품에 두루 사용되는 추세다. 최근 제로 슈거 음료에 들어가는 아스파탐이 협심증, 뇌졸중, 고혈압 같은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설탕보다 200배 더 단 아스파탐이 단맛 감지 수용체를 속이는 식으로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연구팀(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의 설명이다. 세계보건기구도 이미 2년 전에 인공 감미료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인공 감미료는 이제 들어가지 않는 데가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종류의 식품에 침투 중이다. 인류의 건강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제로’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무해함’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유해하지 않음’을 믿게 만든다. 이번 아스파탐 연구는 이 믿음이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길티 플레저’라는 용어가 있다. 죄책감을 의미하는 길티(guilty)와 즐거움을 뜻하는 플레저(pleasure)의 합성어로,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쾌락을 만끽하려는 심리 상태를 뜻한다. ‘제로’를 찾고자 하는 마음의 근저에 이런 주문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본주의 상술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변화의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소비자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