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영화숙·재생원 181명 중대한 인권침해 확인”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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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첫 부랑인 집단 수용시설
직권조사 결과 진실규명 결정
폭행·성폭행·시신 암매장 인정
“국가가 책임 지는 것이 도리”
시 “피해자에 위로금 등 지원”

26일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65년 만의 진실규명에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26일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65년 만의 진실규명에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부산 최초 부랑인 집단 수용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에서 시신 암매장·폭행·성폭행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산시는 피해자들이 아픔을 딛고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방안을 마련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26일 부산시의회에서 영화숙·재생원 사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건 조사 결과 181명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진상 규명을 결정했다. 영화숙·재생원 사건은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에 대해 진화위가 최초로 직권조사를 한 사건이다. 진화위는 진술 조사와 각종 자료 조사를 거쳐 신청인 10명과 직권조사 대상자 171명을 확인해 모두 181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영화숙·재생원은 1962~1971년 운영된 부산 최대 규모의 부랑인 집단수용 시설이다. 영화숙은 18살 미만, 재생원은 18살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부산시와 재단법인 영화숙이 부랑인 선도 위탁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진실 규명 대상자 181명은 경찰과 영화숙·재생원 자체 단속반의 불법·과잉 단속으로 강제 수용된 후 강제 노역,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에 시달렸고 교육받을 권리 등 인권을 침해 당했다. 경찰은 단속과 수용 과정에서 아동의 부모 등 연고자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강제로 영화숙·재생원에 수용하며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했다. 영화숙·재생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자체 단속반을 운영해 부모 있는 아이들까지 불법·과잉 단속해 강제 수용하고 감금했다.

폭행과 질병 등으로 사망한 원생의 시신을 주변 야산에 암매장한 사실도 확인됐다. 영화숙·재생원은 군대식 편제와 규율을 갖추고 원생들을 통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과 사망 사고도 자주 발생했다. 원생들은 기준 이하의 식사와 과밀한 주거 공간, 비위생적인 환경 등 열악한 여건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해 사망 사고도 빈번히 발생했다. 두 수용시설은 10세 전후 아동을 포함해 원생들을 각종 무임금 강제 노역에 동원하기도 했다.

이날 인권침해가 공식 인정되자 피해자들은 고통의 세월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영화숙·재생원생존자협의회 손석주 대표는 “저는 9살에 재생원에 들어간 후 탈출을 감행했으나 11살에 다시 잡혔고, 이후 전국 곳곳 수용시설을 돌다 1970년대 대구 희망원에서 수용시설 생활을 마무리했다”며 “당시 전국에 수용시설이 산재해 있었던 만큼 아직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숨죽인 채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이번 조사 결과가 이들이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화위는 사회 정화라는 명목으로 행해졌던 잘못에 대해 지금이라도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국제 인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도리라고 강조했다.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위로금, 생활지원금과 의료비 지원 등도 권고했다. 또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과 트라우마 등을 장기적으로 치유·관리할 수 있는 계획을 만들어 시행하고, 시신 암매장 추정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을 권고했다. 박선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장은 “진실이 드러난 만큼 평생 침묵을 강요받으며 힘겹게 살아왔던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부산시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고 말했다.

부산시는 피해자 지원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부산시 조영태 행정자치국장은 “피해자들에게 500만 원의 위로금과 월 20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고, 500만 원 한도 내에서 의료비를 지원하겠다”며 “피해자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를 2~3배 확장하는 방안을 행안부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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