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아날로그’ 행정 [국가 전산망 먹통]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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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 시스템 마비로 곳곳 혼선
행정 현장마다 전화 업무 폭주
지난해 배터리 교체 권고 무시
“이번에도 인재” 경찰 수사 속도

지난 주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정부의 주요 전산시스템이 중단된 29일 부산 부산진구청 입구에 서비스 이용 제한에 대한 안내가 나오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주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로 정부의 주요 전산시스템이 중단된 29일 부산 부산진구청 입구에 서비스 이용 제한에 대한 안내가 나오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주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인해 정부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민원 서류의 최전방인 일선 행정복지센터는 크고 작은 혼선이 빚어졌다. 민원 서류 발급 여부를 묻는 전화가 폭주했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발급 가능 서류 여부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촌극도 벌어졌다.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거죠?

29일 오전 8시 50분 부산 부산진구 부전1동 주민센터. 주민센터 대기실에는 업무 개시 전부터 주민 8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인감증명서 등 주요 행정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 지난 28일 정부가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정상적인 행정 서류 발급이 어렵다고 공지한 탓에 주요 서류가 필요한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나 이날 오전 9시부터 정부 24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민원 발급 시스템이 재개됐는데, 시민들에게 이 같은 사실이 전달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헛걸음’한 시민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이날 아르바이트를 위해 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박 모(26·부산진구) 씨는 “전산망 먹통 뉴스를 보고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아침 일찍 주민센터에 왔는데 마침 정부24 애플리케이션이 정상 작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괜히 헛걸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무인민원발급기 개시 시점이 달라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강서구 명지1동 주민센터의 무인민원발급기는 오전 9시부터 이용할 수 있었던 반면 부전1동 주민센터 무인민원발급기에는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가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이용이 가능했다.

일선 지자체 내부에서도 공무원 간 업무 소통으로 사용하는 내부 메신저가 마비되면서 전화 업무가 주를 이루며 ‘아날로그 행정’이 이뤄졌다. 공무원 컴퓨터 등에는 보안 상의 이유로 민간 SNS 사용이 어렵다. 공무원 메일 시스템 역시 일부 직원들의 경우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기도 했다. 행정복지센터에는 서류 발급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와 업무 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부산의 한 기초지자체 공무원은 “실시간으로 시스템이 복구되면서 내부적으로도 어떤 게 먹통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구에는 최장 한 달

이날 오후 2시 기준 장애가 발생한 647개 시스템 중 71개 시스템이 복구돼 가동됐다. 이 중 1등급 업무는 전체 36개 중 16개(44.4%)가 정상화됐다.

화재 영향을 적게 받은 국정자원 1~6전산실 시스템부터 재가동이 진행 중이며, 5층 전산실은 분진 청소 후 재가동이 이뤄질 전망이다. 해당 정보 시스템은 정전기, 물에 취약하기에 전문 업체가 1~2주를 거쳐 분진을 제거한다.

반면 국정자원 대구센터 이전 구축되는 96개 시스템 목록은 최장 4주가 소요될 전망이다. 정보자원 준비에 2주, 시스템 구축에 2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력 기업과 조율을 통해 기간 단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96개 시스템에는 1등급인 통합보훈(국가보훈부), 국민신문고(권익위),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안전디딤돌(행안부) 등이 포함돼 있다.

■리튬전지 전담 수사관까지 투입

이번 국정자원 화재가 ‘인재’란 비판이 거세지며 경찰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6월 이뤄진 리튬배터리 정기 검사에서 제조사는 정상 판정을 내리면서도 내구연한 10년이 지나 교체를 권고했다. 그러나 국정자원은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았다.

국정자원 이재용 원장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서 “배터리 사용 권장 기간에 따른 권고가 있었는데 실수가 있었다. 좀 더 쓸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 모든 배터리에 대해서 제품 권장 기간을 지켜서 사용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대전경찰청 형사과장, 팀장 등 20명가량이 전담팀을 꾸려 화재 경위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7일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뒤 현재까지 세 차례 현장 감식이 이뤄졌다. 특히 서울경찰청 리튬전지 전담 과학수사요원 3명도 추가로 감식에 투입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전산실에서 반출해 수조에 담가둔 배터리들은 2~3일가량 잔류 전기를 빼내고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할 예정이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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