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대에 한참 못 미친 2기 진화위… 3기는 상설 기구화해야”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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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 4년 종료, 진실 규명 미흡
조사 대상 제외된 피해자 ‘수두룩’
권한 강화해 적극적 조사 이뤄져야
여야 합의로 조속한 3기 출범 필요

지난달 25일 부산 동구 초량동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종합지원센터로 들어선 한종선(49)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대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파에 걸터 앉았다. 형제복지원에서 나와 일용직을 전전하다 다친 허리가 노숙 시위를 하며 더 나빠진 탓이다.

한 대표는 2012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겠다며 국회 앞에서 수년 동안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5월 말 조사 활동이 끝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그 성과물이다. 하지만 관련 얘기가 나오자 한 대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2기)진화위 출범 당시에는 국가폭력 인정 등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정치적인 논리로 위원장이 바뀐 이후부터는 이상하게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진화위 조사에서 진실규명을 신청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739명(604건) 중 643명(477건)이 피해 인정을 받았지만 실제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한 대표는 “1987년 형제복지원 폐쇄 당시 3500명 이상 갇혀 있었다”며 “그 한 해만 놓고 봐도 피해자 수천 명이 누락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진화위 출범 당시부터 우려했던 점이다. 피해 조사 신청 기간을 2년으로 한정한 탓에 때를 놓친 이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 대표는 “신청 기간을 몰랐거나, 중간 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용기를 내 피해자임을 밝힌 이들도 많다”며 “단체 차원에서 이들의 사례를 모아 한꺼번에 진화위에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허탈해했다.

반면, 형제복지원 사건보다 먼저 벌어진 영화숙·제생원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의 집단 신청이 받아들여져 직권조사가 진행됐다. 한 대표는 “직권조사를 하려면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 36곳 전체를 대상으로 했어야 한다”며 “조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 탓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구제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는 피해 산정 기준이 너무 보수적인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피해자들이 대개 한 시설에 잡혀 들어간 뒤 3~4군데 시설을 옮겨 다니게 되는데, 진화위에서는 ‘피해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기간만 인정을 했다”며 “시설별로 구분하지 말고 강제수용 시설에 있었던 전체 기간을 피해 사실에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형제복지원에서 구타로 사망하거나 정신질환자가 되어 피해 사실을 기억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기록상의 내용만 인정할 게 아니라 왜 정신질환자가 됐는지 적극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 대표와 함께 1984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누나 신애 씨는 이후 정신질환자가 되어 30년 가까이 정신병원에서 생활했지만, 최근 국가배상 관련 1심 재판에서 정신질환 관련 피해 사실을 인정 받지 못했다. 즉각 항소해 2심 판단을 기다리는 중인 한 대표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고 지금까지 달려 온 이유가 가족 때문이었다”며 “돈을 떠나 누나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정신질환자가 된 부분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부실 조사를 막기 위해 한 대표는 진화위를 국가인권위처럼 상설 기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태까지는 진화위가 임시 조직이다 보니 인원 보충을 위해 가해자 입장인 기관 공무원이 진화위로 파견되기도 했는데, 반대로 진화위에서 직원을 각 기관으로 보내 적극적으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피해 신청자들 중에서 형제복지원 운영에 적극 가담한 사실상 가해자를 가려내 책임을 묻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기 진화위는 지난 5월 26일부로 총 4년(1년 연장)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후 6개월 동안 종합보고서를 작성한 뒤 다음 달 26일 공식 해산한다. 미진한 진실 규명을 이어가기 위해 여야 모두 연내 3기 진화위 출범이란 원칙에 뜻을 같이하지만, 조사 권한 강화와 기간 확대 등 세부적으로는 이견이 있다.

한 대표는 여러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와 연대해 제대로 된 3기 진화위의 조속한 출범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정치권을 향해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당한 문제만큼은 정파를 떠나 여야가 합의해서 법안을 통과시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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