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쟁 추경, 현금 살포보다 취약 분야 핀셋 지원해야
소득 하위 70%에 4조 8000억 지급
선거용 의구심에 인플레 자극 우려도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2026년도 추가경정 예산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국무회의를 열어 기획예산처가 내놓은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국내 주요 산업부문별로 원자재 수급 중단 등 공급망 차질이 빚어지는 복합위기에 대한 처방전인 셈이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서민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이번 ‘전쟁 추경’ 시점은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안엔 대규모 현금 지급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인플레이션 자극 등 벌써부터 각종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는 고유가 대응, 민생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추경안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국회는 10일까지 이를 심의해 처리할 예정이다. 이번 추경안에는 서민층에 대해 에너지바우처 지원 강화, 농민과 어업인을 위한 유가 연동 보조금 한시 지급 등 전례 없는 대외 복합 악재의 충격파를 완화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지원안이 포함됐다. 그러나 총 4조 8000억 원을 들여 소득 하위 70% 국민 3580만 명에게 1인당 10만~60만 원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현금 지급에 나서는 것은 자칫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용 추경’이라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 큰 문제는 현금 유동성을 대거 늘리는 이런 방식의 민생 지원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떨어지는 상황이라서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경제는 달러 대비 원화의 환율이 31일 장중 1536.7원에 육박하는 등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미 유동성이 과다해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한다는 지적까지 이어지는 마당이다. 더욱이 유가 상승으로 인해 이미 각종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현금 살포식 지원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 70%에게 현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은 이번 추경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현재 화훼 시설농가 등은 급증한 유류비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자영업자들도 최악의 상황이라며 아우성이다. 반드시 지원해야 할 곳을 철저하게 선별해 핀셋 지원을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곳에 충분한 지원을 못 하게 될 우려가 크다. 정부의 이번 추경안은 긴박한 중동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9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 위기 대응을 위한 추경이 더 큰 위기를 부르지 않도록 여야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오해 소지가 있는 사안을 바로잡아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