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책 읽는 성당, 마스트리히트 도미니카넌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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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 전경. 이상훈 제공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 전경. 이상훈 제공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 전경. 이상훈 제공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서점 전경. 이상훈 제공

네덜란드 남부의 고도 마스트리히트(Maastricht)를 걷다 보면 중세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어진 도시의 역사와 석조 건축물, 좁은 골목길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깊이를 지닌다. 그 가운데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장소가 있다. 바로 도미니카넌 서점(Dominicanen Bookstore)이다.

도미니카넌 서점 입구. 이상훈 제공 도미니카넌 서점 입구. 이상훈 제공

처음 이 공간을 마주하면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춘다. 높은 고딕 양식의 천장 아래 책장이 늘어서 있고, 제단이 있던 자리에는 카페가 자리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책등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언뜻 보면 오래된 성당 같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문화 공간이다.

도미니크 수도회가 건립한 성당. 이상훈 제공 도미니크 수도회가 건립한 성당. 이상훈 제공

이 건물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94년경 도미니크 수도회가 건립한 고딕 성당으로, 수 세기 동안 도시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유럽 사회가 변화하면서 성당의 기능은 점차 약화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종교 시설이 폐쇄되었고, 이후 창고와 군사 시설, 자전거 보관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오랜 세월 건물은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갔고, 한때는 철거 가능성까지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2006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서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단순한 개조가 아니라 성당이 지닌 역사와 공간적 품격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공간 구성은 놀라울 만큼 절제되어 있다. 서점 운영에 필요한 대형 서가는 건물 중앙부에 독립적인 철제 구조물로 설치되었다. 기존 벽체를 훼손하지 않은 채 새로운 구조물을 삽입한 것이다. 방문객은 서가 내부 계단을 따라 오르며 성당의 높은 천장과 아치 구조를 다양한 시선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과거의 건축과 현재의 기능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성당 내부의 철제 서가. 이상훈 제공 성당 내부의 철제 서가. 이상훈 제공
성당 내부의 철제 서가. 이상훈 제공 성당 내부의 철제 서가. 이상훈 제공

중세 시대 성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지식과 사유가 모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날 서점 역시 지식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소다. 기능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 공간을 단순한 상업 시설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연결되는 장소로 평가한다.

오늘날 많은 도시들은 역사적 건축물의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건물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면 활용도가 떨어지고, 상업성을 우선하면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도미니카넌 서점은 그 사이에서 하나의 모범 사례를 제시한다. 과거를 박제하지도, 그렇다고 지워버리지도 않는다. 오래된 공간의 기억 위에 새로운 삶을 덧입힌다. 건축의 역할은 건물을 짓는 데만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중요한 건축적 행위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수백 년 된 성당의 침묵이 공존하는 공간. 도미니카넌 서점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역사를 오늘의 문화로 되살리며, 건축이 시간을 이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보여준다.

아트컨시어지 이상훈 대표. 부산일보DB 아트컨시어지 이상훈 대표.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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