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없는 응징, 참교육 될 수 있나[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제도는 무력하고, 정의는 지연되기 일쑤다. 하소연할 곳 없는 약자들은 해결사가 나타나길 꿈꾼다. 복수 대행이 유행을 타는 배경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은 먼 나라 일이 아니다. 가차 없는 마피아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빈센조’, 가톨릭 신부가 맨주먹으로 범죄 집단을 무너뜨리는 ‘열혈사제’, 피해자들이 의기투합해 힘없이 당하는 서민을 구제하는 ‘모범택시’.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한 장르를 형성한 응보주의(應報主義)는 법보다 빠른 응징을 갈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들 드라마는 극적 카타르시스를 강조하기 위해 가해자의 서사를 생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런 악행에 이르렀는지, 그를 둘러싼 사회적 구조는 무엇인지, 교화 가능성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건너뛴다. 반면 현실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해 사적 처벌의 정당성을 구축한다. 악행의 교정, 교화라는 교과서적 해법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응분의 죗값을 받는 것을 넘어서 ‘쓰레기’는 사회와 영구 격리해야 한다는 위험한 메시지까지 발신한다. ‘모범택시’에서 등장하는 사설 감옥이 극단적인 사례다. 공권력과 제도의 신뢰가 실추된 현실이 응보주의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양산한 토대라는 점은 무참한 대목이다.
이 응징 서사가 마침내 교실로 들어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이다. ‘참교육’은 가상의 교육부 소속 교권보호국을 내세워 무너진 교육 현실을 바로잡는 이야기를 그렸다. 특전사 출신으로 교권보호국 감독관이 된 나화진(김무열)과 임한림(진기주)은 학교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동원해도 된다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받는다. “말로 해서 듣는 놈은 말로, 때려서 듣는 놈은 때려서라도 가르친다.” 나화진의 선언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며 행동으로 옮겨진다.
드라마는 불편한 학교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학교 폭력에 신음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마약·도박 위험에 노출된 교육 현장,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교권 침해 등 학교 안팎의 문제를 체벌과 폭력을 동원해 단죄하는 것이 줄거리다. 학교판 ‘모범택시’로 비유하자면 구원자 역할의 택시 회사 ‘무지개운수’가 ‘교권보호국’으로 바뀐 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학교가 하지 못한 일을 즉각 해결한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세상은 망하는 겁니다.” 기성세대가 쉬쉬했던 병폐 척결에 과감히 나서는데, 절차보다 결과가 빠르고 설득보다 제압이 확실하다. 인간 병기 수준의 활극으로 악행을 처단하는 장면은 통쾌하다.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더구나 드라마 속 소재가 허구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울림이 크다. 매회 등장하는 에피소드마다 초등 교사 자살, 여고 시험지 유출 등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할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 폭력과 수업 방해,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교사의 무력감, 그 와중에 침해되는 다수 학생의 학습권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참교육’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의 공감까지 끌어냈다.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 48개국 상위 10위권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배경이다.
현실에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는 ‘참교육’은 앞서 인기를 끌었던 사적 복수극 계열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결이 드러난다. 선을 넘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일탈을 처벌하면서도 학교라는 공간의 복잡성을 외면하지 않으려 장치를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통쾌함보다 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반성과 교화 없이 응징만으로 학교 현장이 바로잡힐 수 있는가.
2화에서 조폭을 추종하던 폭력 고교생들이 제압된다. 그런데 시리즈 다른 회차에서 이들은 개과천선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깜짝 등장한다. 문제 학생도 변화할 수 있다는 교화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의도다. 4화 시험지 유출 사건 말미에서는 3화 가짜 미투 사건의 가해자 한예리를 다시 불러낸다. 감독관은 성적 조작을 주도한 교사에게 한 학생의 인생을 망가뜨린 책임을 물으며 한예리를 데려와 마주 앉힌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가해자로 보였던 학생이 과거에는 또 다른 피해자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설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은 현실을 상기시킨다.
문제 학생의 변화 가능성과 가해자의 피해자성을 함께 보여 주는 설정은 기존 보복 대행 드라마와 분명 구별되는 문법이다. 학생을 제압하는 것과 학생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바로 그 차이에 오늘날 학교 현장의 고민이 묻어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드라마의 관심은 결국 구조보다 개인에게 머문다. 입시 경쟁과 교육 격차, 가정 해체와 정서적 방임, 학벌 중심 사회가 어떻게 또 다른 문제 학생을 만들어 내는지까지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무책임한 어른을 심판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왜 그런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 시청자들이 교권보호국의 활약에 통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씁쓸함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교권보호국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교육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가칭 ‘교육활동보호국’ 신설 구상과 함께 토론회를 제안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교권보호국을 “파시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교권은 폭력이 아닌 교육적 방식으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접근법은 대립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실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원칙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 수는 있으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학생들을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교권보호국은 드라마 속 판타지일 뿐이며, 폭력적 권한은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참교육’의 흥행 성공은 학교가 제 기능을 잃고 있다는 사회적 불안의 반증이라는 점에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폭력을 내세운 교권보호국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교권보호국이라는 판타지를 소환한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반성 없는 응징을 참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임 역시 교육일 수 없다. 학생 인권과 교권,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생활 지도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응징과 방임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일, 그것이 드라마 ‘참교육’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이제 답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몫이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