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거나 재탕이거나… 동남권 투자 알고 보니 '속 빈 강정' [지역 투자 내용·상공계 반응]
부울경·TK 중심 ‘소부장 거점’
전력반도체 육성, 기존 정책 반복
K로봇, 새만금·TK 양대 축으로
피지컬 AI도 사실상 동남권 홀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명(가운데)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정부가 29일 발표한 반도체, 피지컬 AI,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 투자계획은 사실상 ‘서남권(호남권) 반도체 공장’ 중심으로,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은 기존 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반도체 산업은 서남권(호남권)에 제2 생산거점을 만들어 수도권(용인)과 서남권을 양대축으로 생산 거점의 전국 확산을 꾀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자료:산업통상부 등 관계부처 합동 국민보고회
동남권과 대경권은 부산·구미 등 기존 산업 기반을 활용해 ‘반도체 소부장 혁신 거점’으로 조성한다. 부산에는 전력반도체 제2공공팹을 구축하고, 전력반도체지원단을 발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피지컬AI와 관련해서는 새만금(전북)-대경권을 K로봇 양대 성장축으로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현대차 그룹의 투자를 마중물로 새만금(전북)에 로봇 파운드리와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대경권(대구·경북)에 소재한 자동차·가전 부품기업들이 로봇 부품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 개발· 실증을 지원한다. M.AX(제조업 인공지능 전환)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업종별 특화 AI 로봇을 개발하고 매년 1000대 이상 현장에 보급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동남권에 대한 언급은 없다.
AI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SK, GS, 네이버 등 3개 기업과 협력해 1단계로 울산, 동해, 세종 등에 총 8.4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예정이다. SK는 1단계 5GW를 시작으로 2035년까지 15GW로 확장하는 2단계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이날 발표에서 언급된 동남권 투자계획은 이미 진행 중인 기존 사업을 나열한 수준이다. 부산 기장군의 동남권방사선의·과학단지는 2023년 산업통상부 전력반도체 소부장특화단지로 지정됐고, 제2공공팹과 지원단 모두 2024년에 추진계획이 발표됐지만 아직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울산 데이터센터 또한 SK가 이미 지난해 8월 착공해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삼성과 SK가 직접 발표한 투자계획도 비슷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부울경 지역 투자계획과 관련해 “최첨단 패키지 기판은 부산, 배터리는 울산, 차세대 조선 부문은 거제에 집중 투자하겠다”면서 “삼성전기 부산 사업장을 중심으로 최첨단 패키지 기판 사업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삼성SDI 배터리 투자 부분은 기존에 발표된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투자도 비전 제시 정도에 그친다. 다만,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대한 최첨단 패키지 기판 집중 투자는 기존에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새로운 투자가 일부 기대된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현재 약 5000명이 근무하고 있는 지역 내 최대 규모 고용사업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그룹의 국내 AI·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울경과 관련한 신규 투자 청사진을 사실상 제시하지 않았다. 기존 생산거점을 보유한 울산을 비롯한 부울경에 대한 추가 투자 계획도 제시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신규 투자계획을 기대한 동남권에서는 아쉬운 반응이 나온다. 경남도는 정부 발표의 비전과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의 피지컬 AI 발표는 거점과 예산이 불명확한 추상적 청사진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도는 “경남을 피지컬 AI 국가 거점으로 지정하고, 구체적 실행 계획과 예산을 반영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제엠제코 대표이자 한국전력소자산업협회 최윤화 회장은 “전력반도체 관련 계획은 기존에 발표된 내용인 데다 현재 운영 중인 제1공공팹도 반쪽 기능에 머물고 있어 기업과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정재호 씨는 “지금 부산이 진정 필요한 건 젊은 세대들이 역외로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좋은 기업”이라며 “정부가 해수부와 HMM 이전을 이뤘다는 이유로 해양수산 분야 외에는 어떤 지역적 배려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