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제3개항, 꼭 바다일 필요는 없다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25년 전 주목 끌지 못했던 부산 제2개항
순서 매기는 개항에 새 의미 부여하려면
AI의 바다 열어젖혀 기회 잡을 수 있어야
부산이 제2개항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야심차게 선포를 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제2개항의 의미를 일깨우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2개항이라는 말을 부산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새천년으로 막 접어들던 25년 전이었다. 부산항만공사(BPA)가 출범하고 부산항이 관세자유지역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면서 붙인 것이었다.
부산항만공사의 출범으로 항만 관리의 자주성이 높아지고 부산항이 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항만산업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부산시는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부산시는 2001년 제2개항 원년의 선포와 함께 부산항 발전 전략에 대한 마스터 플랜을 확정하였다. 신항만을 건설하는 것도 모두 이 틀 안에 들어 있었다.
25년 전에 그렸던 부산항 발전 계획들은, 아직 진행 중이긴 하지만, 빠른 속도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신항만이 개항되어 북항에 있던 컨테이너 부두 기능이 이전하면서 북항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에 의해 주도되었던 제1개항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손으로 부산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의미를 담은 슬로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2개항 선언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곧 사라져 버렸다. 그 후유증 탓이었는지 이후 개항이라는 말을 끄집어 내는 것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부산이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때 개항을 떠올리곤 했는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제2개항으로 인해 제3개항을 목청 높여 외치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분위기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개항 150년을 맞아 제3개항에 대한 논의들이 조금씩은 분출되고 있다. 제3개항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근년에 들어와 부각되고 있는 북극항로에 주목하면서 여기에 세 번째의 개항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까지 닫혀 있었던 북극이라는 또 하나의 바다가 열리면서 세계의 중심 항만으로 부산항이 더 올라설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북극항로의 개척이 부산에 어느 정도의 활력을 가져다줄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제2개항의 예에서처럼 반짝하고 등장하였다가 잊혀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개항에 번호를 매겨 자세를 가다듬으려는 것은 좋지만 번호 붙이기의 효과에 대한 기대는 다소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바다를 여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15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국경을 넘는 것이 일상화한 오늘날 개항은 다른 관점에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개항의 뜻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바다를 여는 것이다. 이에 집중한다면 우리의 시선은 결국 바다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부산이 갖고 있는 천혜의 조건인 항만을 발전 동력으로 삼는 전략은 언제나 유효하고 중요하다. 특히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몇몇 해운 대기업들은 부산 이전 의사를 밝혔다. 해사법원의 부산 설치도 확정되었다.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2차 공공기관 이전에서 해양관련 기관들이 또 한번 더해지면 더욱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긴 호흡에서 보면 바다는 어차피 부산의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 볼 때 부산 경제가 결정적으로 정체기에 접어든 것은 바다에서의 기회 상실이 아닌 육지에서의 실기 때문이었다. 중화학공업화라는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타격이 컸다. 그리고 부산에서 성장하여 온 많은 기업들이 부산을 떠났다. 그 가운데에는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도 적지 않다. 기업이 떠나가면서 인재도 함께 부산을 떠났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달 29일 반도체와 데이터 센터 그리고 피지컬 AI 육성에 관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용인과 함께 호남에 반도체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인데, 사실상 국가적 미래가 걸려있는 엄청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부산과 경남에는 기존 산업을 약간 보완하는 수준에서 지원책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AI 혁명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투자 수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오랜만에 다가오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산업 전환 기회를 이번엔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땅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AI가 요구하는 전기와 용수 측면에서는 부산의 여건은 상당히 양호하다. 큰 투자를 유치할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바다에서 부산의 미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육지가 주는 기회를 잡는 것도 부산의 미래엔 중요하다. 제3개항은 꼭 바다를 여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이젠 AI의 바다를 제대로 열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