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숲이 공연장이 되는 여름, 탱글우드 (Tanglewood)
아트컨시어지 대표
미국 매사추세츠주 버크셔의 숲은 여름이면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의 성지가 된다.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 반 떨어진 이곳에는 화려한 도시도, 웅장한 랜드마크도 없다. 대신 숲과 잔디, 바람과 새소리가 음악의 무대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SO)의 여름 본거지인 탱글우드는 자연과 음악이 가장 아름답게 만나는 미국 최고의 여름 음악축제이기도 하다.
탱글우드의 역사는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 심포니가 이곳에서 첫 여름 공연을 가진 이후 9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며 미국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무대에 오를 뿐 아니라,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는 탱글우드 뮤직센터(TMC)의 터전이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세이지 오자와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세계 무대로 나아갔다.
축제의 중심은 1938년 문을 연 쿠세비츠키 뮤직 쉐드(Koussevitzky Music Shed)다. 약 5000석 규모의 반개방형 공연장으로, 무대 뒤편과 객석이 숲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공연장 밖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수천 명의 관객이 같은 음악을 함께 즐긴다. 실내와 야외,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 이 공간은 탱글우드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1994년 개관한 세이지 오자와 홀은 실내악 공연의 중심이다. 유리와 목재를 활용한 공간은 숲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실내로 끌어들이며, 뛰어난 음향을 갖춘 세계적인 실내악 공연장으로 손꼽힌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은 곧바로 숲길을 걸으며 음악의 여운을 이어간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탱글우드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탱글우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피크닉 문화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관객들은 잔디 위에 담요를 펴고 와인과 치즈를 곁들이며 여름 저녁을 보낸다. 클래식 음악을 엄숙하게 감상하는 대신 자연 속에서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음악은 무대 위에서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숲과 잔디,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완성된다.
이번 방문에서는 세이지 오자와 홀에서 조성진과 아우구스틴 하델리히의 듀오 리사이틀을, 다음 날에는 쿠세비츠키 뮤직 쉐드에서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조성진의 협연을 만났다. 인상 깊었던 것은 뛰어난 연주뿐 아니라 같은 음악도 공간에 따라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화려한 공연장이 경쟁하듯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탱글우드의 진정한 경쟁력은 건축의 규모보다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에 있다. 숲은 공연장의 배경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가 되고, 바람은 음악의 마지막 악장이 된다. 그래서 탱글우드는 음악축제를 넘어 자연과 건축, 문화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여름 문화공간으로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 부산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