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문화] 搏殺
(칠 박 / 죽일 살)
'初戰撲殺(초전박살)'이란 구호를 일상어처럼 듣던 시절이 있었다.참으로 언어적 폭력의 극치라 할 만한 이런 말에 길들면서 우리는 성장해왔던 것이다.
지금도 살벌한 말들이 횡행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撲殺처럼 소름끼치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決死反對(결사반대) 打倒(타도) 粉碎(분쇄) 등.어디 그뿐이랴.'죽일놈' '미친놈'은 예사이다.힘들어서 '죽을 맛',미워도 '죽겠다' 싫어도 '죽겠다',맛있어도 '죽겠다' 맛없어도 '죽겠다',심지어 보고 싶거나 예뻐도 '죽겠다'고 한다.
죽음의 말을 이렇게 입에 달고 다니니 어찌 사회가 살벌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搏의 는 斧(부:도끼)와 통하므로,도끼 같은 것으로 내려치는 것이 곧 搏이다.
'치다'는 뜻을 가진 한자에 擊(격) (단) 拍(박) 樸(박) (추) 打(타) (표) 등이 있으나,搏殺의 搏은 비교적 잔혹한 이미지로 쓰이고 있는 예이다.
하지만 搏이 그런 뜻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어서,脈搏(맥박)의 搏처럼 그냥 '툭툭 치다'는 뜻으로,龍虎相搏(용호상박)의 搏처럼 '손으로 때리다'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간혹 '縛'과 통용해서 捕縛(포박)을 捕搏으로 쓰기도 하나,捕縛은 잡아묶는 이미지가,捕搏은 붙잡는 이미지가 강조된 것이다.또한 搏殺을 撲殺로 쓰이도 하는데,양자간에 별다른 뜻의 차이는 없다.
衆口金(중구삭금)이란 말이 있다.이는 '뭇 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인다'는 뜻인데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언어의 주술적 힘을 나타낸 말이다.
시대가 변하였으니 이제는 決死 打倒 粉碎 등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을 법한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