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17 몰타에서 튀니지 케리비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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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드는 폭풍·비구름 피해가며 '조마조마'

5월 14일. 몰타에서 따로 입항 신고나 입국절차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EU(유럽연합)는 하나의 나라로 한곳에서(나의 경우는 그리스) 입국절차를 받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 없다고 했다.

주민 얘기로 마리나 주변에 북한 대사관이 있다고 했다. 30년 전에 대사관이 들어섰단다. 예전에는 약 천 명 가까운 북한 동포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단다. 주로 조선소에서 근무한단다. 혹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통일이 되고 나면 자동차여행이 가장 활성화 될 것 같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신나지 않는가? 요트와 자동차가 케이프타운까지 시합을 한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 통일이 되고 나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섬 아닌 섬나라이다. 자동차로 국경선을 통과하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

5월 15일. 날카로운 비바람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여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폭풍이라고 하였다. 이 바람이 지나가면 10월까지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한다. 거친 바람이 너무 오래 계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는 두 가지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대서양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대서양을 넘어가는 것이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대서양을 건너게 되면 파나마 이후 남태평양 쪽이 좀 더 좋은 기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11월에 대서양을 건너게 되면 파나마 이후 지역을 통과할 때 스톰 시즌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남태평양이 아니라 하와이를 거쳐 괌 쪽으로 항해하는 북태평양 코스로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5월 18일. 저녁 무렵 어학연수를 온 한국 여학생 3명이 배를 방문했다. 이름이 주희, 화정, 정은이다. 그 중 한 명은 해양대학을 다니다 왔는데 집이 부산 해운대라고 하였다.이 친구들 덕분에 한국 식료품을 취급하는 아시아식품저장소를 알게 되어 라면 35개, 미역 한 봉지, 된장 1개, 쌈장 1개를 샀다. 가격이 한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소주는 360㎖ 한 병에 8천 원 정도했다.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하지만 내일 다시 슬그머니 이곳을 찾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희 학생이 준 한국식 도시락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이어서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제대로 된 한국식을 한 끼 먹고 나니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았다.

5월 19일. 기상 예보를 들으니 알제리 북쪽 넓은 바다에서 바람이 모여 여전히 몰타로 거세게 다가온다고 한다.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의 시위가 아우성이다. 배에 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빨랫감을 꺼내서 세제를 풀어 담가두었다. 몰타에 도착한 지도 6일째이다.

5월 22일. 계류비를 정산했다. 300 유로 정도 나왔다. 며칠만 더 있었으면 한 달 요금과 같게 될 뻔했다. 몰타에서 튀니지로 가는 데에는 따로 출항증명서(포트클리런스)가 필요 없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바람이 좀 잦아들었다. 길이가 30m나 되는 메가요트의 선장(미국인 여성)이 소말리아 해역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선장이 한 말이 또 한 번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허리케인은 7월부터 시작이니까 서둘러서 가세요.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트레피드가 계류한 곳 앞에 독일 노부부가 있다가 가고 이틀 뒤 그 자리에 이탈리아 부부가 왔다. 그는 유람선 선장으로 케리비안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도 6월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미 대서양을 넘어가고 있을 텐데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5월 23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평범한 봄날의 아침이다. 5시에 잠이 깨었으나 날이 밝지 않았다. 수도 호스, 전기 코드 등을 걷어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계류 줄을 풀어 배위로 던지고 배를 안벽에서 떼어냈다. 6시쯤 되니까 주변이 훤해졌다. 서풍이 불고 있었다. 세일을 올리고 북서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잠시 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정확히 정면으로 돌아섰다. 주 돛은 그대로 둔 채 큰 보조 돛은 거두어들였다.

13시 몰타가 점점 희미해지며 작아져갔다. GPS로 얼마나 떨어졌을까 확인해보니 몰타의 북쪽섬인 고조섬과 14마일 거리였다. 목적지인 튀니지 케리비아까지는 141마일이었다. 오후에는 바람이 사라져서 바다가 거울처럼 되었다가 17시가 되면서 가는 물비늘이 남동쪽에서 다가왔다. 보조 돛을 다시 펼쳤다. 속도가 좋아졌다. 5.5노트를 넘어섰다.

물위에 떠있는 거북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의 양이 많아지더니 가는 비를 뿌렸다.

5월 24일. 새벽에는 몰려드는 비구름 때문에 레이더가 바빠졌다. 바람이 뒤쪽으로 돌아섰지만 항해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세일을 몽땅 내리고 엔진으로 항해했다. 바람을 받지 못하니 배가 좌우로 꿀렁꿀렁대며 나아간다.

날이 밝자 희미하게 판텔레리아 섬이 보였다. 이 섬은 이탈리아의 섬으로 튀니지 서안과 40마일쯤 떨어져있다. 정박하기 좋은 마리나가 있다고 들었지만 튀니지로 바로 가기로 했다.

튀니지 케리비아까지는 3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낮게 깔린 구름을 살피느라 제일 바쁜 건 역시 레이더이다. 필요 없다고 해도 비구름을 찾아내었다고 알람을 울려서 알려준다. 주변을 한 번 쭉 살피고 샤워를 하다 도중에 불현듯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 물을 줄줄 흘리며 나와서 밖을 한 번 살폈다. 장애물은 없었다. 마음 놓고 남은 샤워를 즐길 수 있었다.

오후로 넘어가면서 빗줄기가 굵어졌다. 튀니지 케리비아를 13마일쯤 남겨두고 포트컨트롤을 불렀지만 무응답이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케리비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6시께 케리비아 항에 도착했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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