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통기타 음악창고] 음악파트너를 12번 바꾼 라나에로스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통기타 혼성 듀엣의 시대를 연 라나에로스포에게 여성 멤버의 잦은 교체는 논란거리였다. 김형찬 제공

196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 최초로 등장한 청년문화세대는 성인들과 구분되는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을 통기타음악과 록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통해 드러냈다. 그런데 이런 음악들은 여전히 성인음악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음악시장에서는 간간이 소개되는 정도였고 통기타음악은 '세시봉'과 같은 음악감상실, '싱얼롱 Y'나 '청개구리' 같은 기독교가 주도한 문화공간에서 대학생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수용자들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누군가가 큰 히트를 성공시켜 주류음악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 포문을 연 곡이 라나에로스포라는 혼성듀엣이 1971년 1월에 터뜨린 히트곡 '사랑해'였다. 이 곡은 중앙대생 오경운이 작사 작곡한 곡인데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며 지은 곡으로 대학가에서 애창되던 곡이었다. '사랑해'는 6개월 만에 당시 히트의 기준선인 3만 장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혼성듀엣의 효시, 당시 청년세대서 폭넓은 지지
여성멤버에 지나친 관심으로 오래 못 버티고 탈퇴


라나에로스포의 남자멤버 한민(본명 박윤기)은 세기음악학원에서 통기타를 가르치다가 1970년 3월 그곳의 오르간 강사 김학송의 소개로 은희(본명 김은희)를 만나 커플즈라는 듀엣을 결성했다. 제주 출신으로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살롱가에서 무명가수로 노래하던 은희는 한민과 듀엣을 결성하여 TBC-TV의 신인무대에서 팝송번역곡인 '태양의 파편'으로 첫선을 보였다. 그런데 은희는 1970년 8월 '사랑해'를 취입하고 2주도 못 되어 팀을 탈퇴해 버렸다. 은희는 탈퇴한 이후 1971년 3월 '꽃반지 끼고'를 발표하여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 못지않은 히트를 기록하며 최대의 신인여가수로 떠오르게 된다.

라나에로스포가 선을 보인 남녀혼성듀엣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문화가 사회저변을 여전히 지배하던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전면적인 선을 보인 편성이다. 청순한 남녀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분위기의 노래를 연출할 수 있는 남녀혼성듀엣은 청년문화세대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적절한 구성이었다. 라나에로스포의 성공 이후 뚜아에무아, 블루진, 바블껌 등이 이런 편성을 따르며 성공을 이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편성이 사랑하는 남녀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만큼 부담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뚜아에무아는 연인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구설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라나에로스포의 문제는 여성멤버가 1년을 못 넘기고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은희의 교체로 시작된 두꺼비 한민의 개구리 찾기는 1982년 12번째의 개구리 김희진까지 이어지며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한 기록을 이어갔다.

한민 본인은 멤버를 교체할 때마다 자신도 고통스러웠다고 주장했지만 탈퇴한 여성멤버들은 한민의 여성멤버에 대한 지나친 오버가 원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총각이 처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기엔 한민의 나이가 아직 젊었던 탓이리라. 대중음악평론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