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우리 브랜드] 오복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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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정성으로 '60년 익힌 장맛'

부산 사하구 감천동 ㈜오복식품 본사 공장에서 채경석 대표이사가 '오복양조 황가'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A대형마트가 있는 코앞에 경쟁업체인 B마트가 생겼을 때의 일이다. A마트가 오복식품 측에 B마트에 오복간장 제품을 주지 말라고 압박했다. 오복식품은 난처한 입장에 처했지만, 여러 번 이어지는 B마트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B마트 개업 당일, 판매대에는 오복간장 제품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결국 광주 B마트 점포에서 저희 제품을 가져왔다고 하더라고요." ㈜오복식품 채경석(63) 대표이사의 회고다. 대형마트 개업날에는 오복간장 제품이 꼭 5위권 안에 든다는데. 어떤 마트에서는 1위를 하기도 한단다. 부산 사람들의 부엌에 십중팔구는 있는 생필품 중 생필품, 오복간장의 위력이다.


수차례 국내 간장파동에도
맛과 품질로 위기 넘겨

양조설비·KS·ISO 인증 등
숱한 국내 최초 기록
간장업계 '살아 있는 역사'


부산 사하구 감천동 ㈜오복식품 본사 장류연구소의 문을 열자 깊고 향긋한 간장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채 대표가 매일 아침 간장 맛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1974년, 스물 일곱에 대리점 파업을 해결하라는 임무를 띠고 부친이 경영하던 회사에 입사했던, 맛에는 도통 둔감했던 그는 이제 간장만큼은 어느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까지 지적해 낸다.

오복간장의 역사는 올해로 꼭 60년. 채 대표의 부친인 고 채동욱 창업주가 군납에서 민수로 전환한 것이 1952년이다. 오복간장의 60년은 그대로 국내 간장업계의 역사이자, 부산의 장류기업이 수차례의 간장 파동을 어떻게 이겨내고 줄곧 업계를 선도해 왔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빠른 시간에 부산에서 간장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오복에 첫 번째 위기는 1970년대 중반에 왔다. 위로는 미원(지금의 대상), 샘표가 부산 시장에 치고 들어왔고, 아래로는 물을 타고 조미료를 섞은 불량간장이 저가로 시장을 잠식했다. 영업 조직이 인플레이션 효과로 인한 매출 유지에 안주하는 사이에, 판매량은 매년 20~30%씩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우리도 물을 타자' '세금을 절반만 신고하자'는 제안이 잇따랐지만, 채 대표는 고민 끝에 거절했다. 대신 대리점 점주들에게는 판매량 그래프를 공개하고, "여기서 문을 닫든지, 힘을 합해 다시 해 보자"고 배수진을 쳤다. 매출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몇 년 뒤 검찰의 불량간장 일제단속으로 영세공장들이 줄줄이 폐업을 맞았다. 채 대표는 "정직이 오복을 살린 것"이라고 믿는다.

80년대와 90년대, 두 차례 간장파동이 있었다. 첫 번째는 양조간장 논란이다. 한 방송사가 '국내에는 발효 방식의 100% 양조간장이 없다'는 내용으로 심층보도를 했다. 실제로 국내에는 까다로운 양조간장 설비가 없었다. 경쟁업체가 외국 설비를 수입해 생산을 준비하는 사이, 오복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직접 설비 개발에 나서 국내 최초로 설비 국산화와 양조간장 생산에 성공한다.

두 번째가 MCPD 파동이다. 발효 대신 산을 이용하는 산분해간장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이 성분이 발암 우려 물질로 알려지면서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오복식품은 MCPD 파동을 먼저 겪었던 일본의 후쿠오카장류조합에서 이 성분의 분석법을 배워 온 뒤에 이 성분을 0%대로 거의 완벽하게 제거하는 기술을 전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한다. 오복은 이후 이 기술을 시장에 무상으로 공개한다.

식품업계 최초 KS마크, 장류업계 최초 ISO(국제표준화기구) 9001, 9002 인증 등 오복간장이 보유한 업계 최초 기록들은 결국 맛으로 모인다. 잡맛이 없는 깔끔하고 구수한 맛은 부산 시장의 80% 이상을 지키고, 전국 시장의 15%대 점유율로 업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오복간장의 가장 큰 힘이다. "오래된 맛집들은 맛의 비결로 오복간장을 꼽는다"는 채 대표의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오복식품은 현재 감천동 본사, 김해 장유, 경남 진영 공장에서 간장을 비롯해 고추장, 된장 등 장류를 생산해 연 30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다. 한·러 수교 이후 부산의 보따리상들이 수출을 시작해 러시아인들 사이에 간장의 대명사로 식품 한류를 불러일으켰던 러시아 시장을 필두로 세계 시장 도전도 계속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제안도 있었지만 오복식품은 한눈 팔지 않고 장류 전문 기업에 매진할 작정이다. "장맛은 주부가 일 년 내내 쏟는 정성에 비례할 수밖에 없어요. 변함없는 정성으로 맛과 품질을 고집한다면 오복간장이 식품 한류, 간장 종주국의 명예를 이끌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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