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돼지국밥, 75년 ~ 되돌아보면 언제나 넌 그 자리에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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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의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 영도 대교동2가의 '소문난돼지국밥' 김현숙(80) 사장이 토렴을 하면서 국밥을 말고 있다.

영도 대교사거리 인근 식당가 모퉁이에 위치한 '소문난돼지국밥'. 입구 간판에 큼직하게 '75년 전통'이라 씌어 있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노포에 들어섰더니 김현숙(80) 사장이 손에 뚝배기를 들고 펄펄 끓는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토렴을 하고 있다. 이 가게는 모친 이순락(2009년 작고) 여사가 1938년 자택에서 문을 열어 75년째 한자리에서 이어져 온 것이다. 현존하는 부산의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이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형성된 음식으로 알려져 왔다. 이북 피란민들과 함께 내려온 이북식 순대국밥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으로 끓인 희멀건 죽('꿀꿀이죽' 혹은 '유엔탕'으로 불렸다)과 만나면서 원형이 생성됐다는 설이다. 따라서 '소문난돼지국밥'의 존재는 향토의 식문화사에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버지, 할아버지의 돼지국밥

"울산 나사리 출신으로 영도로 시집온 어머니가 집에서 가마솥을 걸어놓고 국밥을 끓인 게 시작이었어요." 배로 실려온 제주 똥돼지를 집에서 직접 도축해서 썼는데, 당시에는 껍질이 얇고 비계가 적어 국밥을 끓여 놓으면 정말 맛이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산 돼지국밥집
어머니-아들-손녀 3대째 이어져온 산증인
"제주 똥돼지 직접 도축해 만든 고급음식"
한국전쟁 시기 꿀꿀이죽 유래설 뒤집어

대체 어떤 맛이었을까? 그때와 같은 상차림이 가능할지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하루 뒤에 오란다. 달라진 건 장작이 가스불로 바뀌고, 돼지머리와 순대가 빠진 것뿐이라 기본적으로 뼈를 우린 육수의 맛은 그대로 일거라고.

차려낸 밥상은 단출했다. 토렴한 국밥에 대파와 후추를 올리고 새우젓과 마늘, 쌈장, 김치만 곁들여 내왔다. 국물은 맑은 편이다. 한번 끓여 기름기를 뺀 수육을 뼛국물에 살짝 넣었다 뺀 것을 국밥국물로 쓴다고 했다. 국밥 자체에 전혀 양념을 하지 않고 내는 것도 요즘과 다른 점. 담담해서 후루룩 먹기 편했다.

다진 양념(속칭 '다대기'), 매운 고추와 양파, 젓갈에 무친 부추 따위의 향미 채소와 면 사리는 없었는데 "그렇게 먹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옛날에 어머니는 고추를 먹으면 풍이 온다면서 못 먹게 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추도 모자라 매운 다대기나 양파를 듬뿍 내줘야 좋아하니 참…."

그는 요즘 돼지국밥이 너무 맵고 짜졌다면서 왜 그렇게 자극적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오랜 단골들은 새우젓으로만 간을 하는 옛날식을 선호한다고.


■꿀꿀이죽과 돼지국밥

10대 후반에 전란의 한가운데 휩싸였던 김 사장은 "피란민들의 꿀꿀이죽에 비하면 돼지국밥은 고급음식이었다"고 기억했다. 전쟁이 끝나고 피란민들과 꿀꿀이죽이 동시에 자취를 감추고도 한참 뒤에야 부산에 돼지국밥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 전신)의 진수식 행사에 수백 명 분의 돼지수육 납품을 독차지했을 때가 전성기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30년 넘은 단골을 자처하는 홍영만(62) 씨가 가게 한구석에서 국밥을 뜨다가 말을 거들었다. "예전 영도구청사가 인근에 있을 때는 점심시간마다 줄을 서서 먹었어요." 아버지 손에 이끌려왔던 아들이 다시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3대 단골도 숱하다.

그 당시 700원쯤 하던 국밥 가격은 지금 6천 원으로 올랐다. 1989년에 기와집을 헐고 건물을 짓고서야 간판을 달았다. 딸 김은경(40) 씨가 일을 거들면서 3대째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생각하는 돼지국밥의 유래

부산시가 지난 2009년 발간한 '부산의 향토음식'의 기술을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부산 돼지국밥이 전란의 시공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동 하동집(1953년), 범일동 할매국밥(1956년), 토성동 신창국밥(1969년) 등 부산의 노포들이 50∼60년대에 문을 열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서면시장의 송정3대국밥에서 토렴을 하는 모습. 고슬고슬한 밥이 든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는 토렴을 하면 육수는 밥알에 배이고, 밥의 전분은 육수에 배인다.
하지만 이를 돼지국밥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면시장통의 송정3대국밥은 1948년께 연지시장 좌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비슷한 시기 밀양 무안에서도 돼지국밥을 말았다. 이에 앞서 제주에서는 돼지뼈를 우린 고깃국수를 즐겼다. 돼지의 부산물로 국물을 우린 음식을 먹은 게 훨씬 전이라는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산의 향토음식'에서 돼지국밥 연구를 수행했던 김상애 전 신라대 교수는 "고기가 귀한 시절에 가축을 이용한 장국밥은 어느 지역에서나 있었고, 돼지가 재료가 되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산의 경우 피란시절을 거치면서 지금의 돼지국밥이 체계화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상현(42) 씨도 "이북 피란민들의 고깃국물 다루는 기술로 돼지국밥의 조리법이 정교화되면서 대중화되어 갔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그걸 원조나 기원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소문난돼지국밥'의 75년 역사를 자신의 블로그(네이버 '바다보며한잔')를 통해 처음 알렸던 김은민(49) 씨는 "모진 세월 동안 부산에 힘이 되어 준 돼지국밥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일본의 경우 향토음식으로 특징되는 여러 종류의 라멘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를 보존하거나 관광자원화하는데 열심인 데 반해 부산의 향토음식인 돼지국밥은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오랜 역사에 비해 스토리텔링이 너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돼지국밥이 부산사람들에게 던지는 숙제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해운대 센텀시티의 '장독마을' 노재목(55) 사장이 기장에 설치한 장작 가마솥에서 24시간 돼지사골을 우려 뽀얀 돼지국밥 육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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