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54> 지리산 칠선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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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 감춰 둔 무릉도원, 생명·청정을 내뿜다

온종일 칠선계곡을 함께 올라온 석궁 스님(왼쪽)과 길동무였던 지리산국립공원 백무동탐방소 김찬수 씨가 천왕봉에서 지친 다리를 어루만지며 쉬고 있다. 아래로 보이는 깊은 골짜기가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칠선계곡이다.

원시림이 열렸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동에서 지리산 천왕봉(1,915.4m)까지 9.7㎞ 구간.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제주도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 3대 계곡. 1997년 태풍 '사라'로 등산로가 사라져 1998년부터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자 반달곰이 들어앉았다. 현재 칠선계곡 일대 12만 4천㎡는 국립공원 중에서도 특별보호구역이다.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 4.3㎞는 상시 개방돼 있지만, 비선담에서 천왕봉까지 5.4㎞는 지정된 달의 월요일 하루 60명만 허용한다. 그 신비한 원시 계곡에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내를 받아 <산&길> 취재팀이 다녀왔다.

■신비한 물의 나라로

지리산 아흔아홉 골짜기 중 깊고 장엄하기로 단연 으뜸인 칠선계곡이 그 속살을 잠시 허락했다. 오직 1년에 5·6·9·10월 넉 달. 횟수로 치면 16회. 한 해 1천 명 정도에게만 개방되는 추성동~천왕봉 코스다. 안내해 주기로 한 지리산국립공원 백무동탐방소 김찬수 씨와는 오전 8시 추성주차장에서 만났다. 거리도 거리지만, 칠선계곡 코스는 줄곧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시간이 만만찮게 걸린다는 것이다. 당일 내려오는 산행은 포기하고 장터목 산장에서 1박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지리산 아흔아홉 골짜기 중 가장 깊고 장엄
연 16회, 1천 명에게만 개방하는 자연 성지
폭포마다 비경 파노라마… 온몸 빨려드는 듯
구름 속 보이는 덕유산, 선경이 따로 없네



추성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칠선교~두지동~선녀탕~비선담~출입통제소~칠선폭포~대륙폭포~삼천폭포~마폭포~천왕봉~제석봉을 거쳐 장터목 산장에서 1박을 하고 장터목~제석단 갈림길~거북바위(망바위)~소지봉~참샘~하동바위~너럭바위~백무동탐방안내센터까지 16.8㎞를 걸었다. 추성주차장에서 천왕봉까지는 7시간 40분 정도 걸렸고, 다음 날 장터목에서 백무동탐방안내소까지는 3시간 30분 만에 하산했다.

추성동 입구 의탄교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옆에 새 다리가 생겨 더욱 고즈넉해졌다. 둥근 마차바퀴 모양의 상징물을 보니 추억이 떠올랐다. 갓 제대를 하고 팔팔하던 시절 친구 2명과 함께 칠선계곡을 통해 야간산행을 했다가 죽을 고생을 한 경험이 있었다.

추성동을 지나자 짙푸른 신록과 장쾌한 물줄기가 반겨 주었다. 앞서가는 스님 한 분이 있었다. 바랑 하나에 고무털신을 신었다. 두지동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두지동은 옛 가야 구형왕이 군량미를 두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데 담배 농사를 많이 했던지 흙으로 지은 높은 건조장이 남아 있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민가로 정기한 씨 집이다.

깊고 푸른 소가 예사롭지 않았다. 선녀탕이다.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훔친 곰. 그 옷을 찾아준 노루. 일곱 선녀와 곰, 사향노루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그 다음이 비선담이니 아마도 옷을 찾은 선녀가 하늘나라로 올라갔던 곳인가 보다.

■대륙폭포 그 장엄함

잘 정비된 탐방로는 사실상 비선담에서 끝났다. 비선담을 지나면서부터 본격 원시 계곡 산행이 시작된다. 늘 물소리가 기운을 북돋워 주어서인지 오르는 길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 지리산에 100번도 더 왔던 <산&길> 황계복 산행대장이 "칠선계곡은 지금부터 시작이니 긴장하라"고 말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이 없는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칠선계곡은 특히 태풍이나 장마철이면 하루 사이에 물길이 달라지고, 길이 없어진다고 했다.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내리꽂히는 물줄기가 집채만 한 바위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대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 위로 길이 나 있다. 작은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도 넉넉해 이끼를 푸르게 키웠다. 김찬수 씨가 "그 물이 제대로 된 약수"라고 해서 체면 차리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계곡이 점점 깊어진다. 그런데 녹음은 오히려 옅어진다. 무슨 조화인지? 고도가 높아지면서 계절은 점점 거꾸로 가고 있다. 칠선폭포에서 잠시 쉬었다. 온몸에 흐른 땀이 금세 식는다.
수량이 풍부한 대륙폭포의 위용.
계곡을 건넌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달아 놓은 작은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20분 정도 더 올라가니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이 있다. 왼쪽 골짜기의 요란한 물소리에 홀려 몸이 빨려 들어간다. 대륙폭포다.

칠선계곡 최고 폭포라는 대륙폭포는 수량도 풍부하고 낙차도 커서 보는 이를 압도했다.

황계복 산행대장은, 대륙폭포는 1963년 부산일보의 후원으로 부산 대륙산악회가 지리산 칠선계곡을 최초 답사하면서 찾아내 명명한 폭포라고 유래를 설명했다. 지형도에도 대륙폭포로 등재돼 있는데 이런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대륙'인지 궁금해한다고 김 씨는 말했다. 대륙폭포 옆 골짜기에 있는 지금의 삼천폭포는 부산일보의 이름을 따서 '부일폭포'라고 불렀다고 했다.

대륙폭포를 되돌아 나와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다. 산죽밭을 지나니 고산 지대에서 자생하는 아름드리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전나무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얼마 전 분 강풍에 쓰러진 모양이다. 오래전 부러진 나무는 천천히 제 몸을 산화하는 중인데 그 나뭇등걸에 어린 싹이 자라고 있다. 생명의 순환에 숙연해진다. 
두지동으로 가는 길은 무릉도원 입구인 양 신비롭다.
■다시 겨울로 들어서다

낮 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간다는 날씨에 얼음이 있다고 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벌써 5월 아닌가. 김 씨는 있다고 했다. 다소 규모가 작은 좌선폭포를 지나 이번에는 삼천폭포다. 김 씨는 이 폭포를 삼층폭포라고 불렀다. 물줄기가 부챗살을 펼쳐놓은 것처럼 넓다.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이제는 배경색을 완전히 바꾼 계곡이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을씨년스럽다. 진달래가 붉게 피었다. 여긴 3월이다.

돌절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부도같이 인공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 왜 있는 것인지. 이곳 마천면 출신인 김 씨는 "어릴 때는 친구들과 절구 모양 바위를 보고 하느님이 절구를 옮기다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칠선계곡의 마지막 폭포인 마폭포가 보인다. 천왕봉과 중봉 사이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다. 오른쪽 제석봉과 천왕봉 사이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삼층폭포를 만들었다.

마지막 폭포를 지나니 정상을 향한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급한 오름길 양옆에 속이 빈 주목과 미끈한 몸체를 자랑하는 구상나무가 빽빽하다. 몸은 힘들지만 정상은 가까워지고 있다. 등산로 옆 계곡에 정말 잔설이 남아 있다. 놀라워라. 이 더위(?)에 눈이라니. 여름 초입에 시작한 산행이 어느새 겨울로 접어든 것이다.
칠선녀의 전설이 깃든 선녀탕.
드디어 천왕봉이다. 함께 오른 칠불사 석궁 스님은 새에게 준다며 빵부스러기를 들었다. 장엄한 일몰을 보면서 장터목 산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소지봉을 지나자 저 멀리 구름 속에서 덕유산과 가야산이 보인다. 선경이 따로 없다. 찬물이 콸콸 나오는 참샘에서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 동고비와 놀았다. 함양군수가 하동군수와 장기를 둬서 지는 바람에 '하동 바위'가 된 바위지대를 지나 백무동까지는 길이 편안해서 한달음에 내려올 수 있었다. 문의: 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부산일보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지리산 칠선계곡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리산 칠선계곡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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