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일의 낭군님' 김선호, 그대를 계속 보고 싶소

뒤늦은 발견이다. 그래서 더 빛난다. 배우 김선호(32)가 올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 tvN '백일의 낭군님'에서 한성부 참군 정제윤 역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날카로운 '뇌섹남'의 모습부터 다소 낯간지러운 대사도 능글맞게 소화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극의 '키플레이어'로 활약했다. 그동안 연극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온 김선호의 진가가 나타나고 있다.
■ 첫 사극 도전 "어른들이 더 좋아하셔"
지난달 30일 종영된 '백일의 낭군님'은 왕세자에서 기억을 잃고 평민으로 전락한 원득(도경수)과 조선 최고령 원녀 홍심(남지현)의 로맨스를 그린 퓨전 사극이다. 두 사람의 멜로 외에도 궁궐 내 치열한 암투, 개성 있는 조연들의 열연이 어우러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첫 사극 도전인 만큼 고심 끝에 합류를 결정한 김선호는 극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자신의 선택이 옮았음을 입증했다. 부모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현감(정제윤의 직책)'이가 우리 아들이다"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다고.
"어른들이 더 좋아해주셨어요. 내용이 비교적 쉽고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서 그런가 봐요. 중간부터 봐도 편하셨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부모님은 너무 자랑스러워하시고 '우리 아들 나온다'며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다니셨어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백일의 낭군님'이 찜질방 TV에서 가장 많이 틀어졌던 드라마래요.(웃음)"
그는 "내 역할은 드라마 속 중심 사건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물러나서 조사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옆에 누가 있어도 사건을 설명해야한다. 혼자 세 줄 이상 대사를 읊은 적도 있었다"며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과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가 숙제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스스로 사건에 몰입하는 순간의 타당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좀 더 편안하게 이해되고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위트는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 "원득-홍심의 사랑 이어준 역할 만족"
정제윤은 평소 믿고 따르는 왕세자 원득을 위해 홍심을 향한 마음을 깨끗이 포기한다. 안면인식장애를 앓아도 홍심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던 그의 가슴 아픈 짝사랑은 짠함과 공감을 일으켰다. '보고 싶었소. 그대의 얼굴이' '혹 그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날 이곳으로' '마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등 기억에 남는 대사도 여럿 남겼다.
"원득이랑 홍심이 이미 혼인을 한 상태인데 거기서 좋아한다고 하는 건 나쁘잖아요. 이 정도가 원만했고 둘을 이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 거니까 만족해요. 우리 드라마에 맞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아쉬운 건 애월이죠. 좋아한다고는 안했지만 제윤이가 애월이를 너무 이용하고 부탁만 한 것 같아서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하나 싶어요.(웃음)"
"저라면 두 번째 본 여자한테 '보고 싶었소 그대 얼굴이' 같은 말은 절대 하지 못했을 거예요.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그렇게 또렷이 알아본다는 게 쉽지 않고 좋아한다는 건 더 어렵지 않았을까요. 제윤이는 정말 용감한 남자예요. 나중에 제윤이의 행동이 점점 이해가 되고 캐릭터에 빠져드니까 '내가 너 좋아하는데 그래서 나 좋아해달라고 한 적은 없잖아' 이렇게 말하는 남자가 있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 "시청률 10% 넘을 줄 생각 못해"
지상파 드라마도 10% 시청률만 넘겨도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상황 속에서 '백일의 낭군님'의 선전은 눈부셨다. 무려 14.4%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tvN 드라마 4위에 해당한다. 김선호는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예상 못했다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과 행복한 미소를 번갈아 지었다.
"7~8%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봤는데 10%가 넘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다들 축제 분위기였죠. 기두 형은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않냐'며 기뻐하더라고요. 예상 못했던 일이 터져서 너무 좋았어요."
'백일의 낭군님' 팀은 시청률 공약으로 내걸었던 엑소 '으르렁' 댄스를 함께 추며 화제를 모았다. 김선호는 "지현이가 10% 넘으면 춤이라도 춰야지 왜 가만있냐는 식으로 말했는데 '아 그래? 그럼 해볼까'라는 분위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며 "연습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영상을 촬영하니까 기억이 날아가더라. 집중하는데 계속 틀리니까 속으로 '어떡하지!'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정신 차리고 영상을 보니까 이거 큰일났구나라는 걱정이 밀려왔어요. 연습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성의 없는 것처럼 보일까봐 마음 졸였거든요. 이후 SNS에 사과 글 올렸습니다.(웃음)"

■ "'백일의 낭군님' 팀과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
드라마는 끝났지만 도경수, 남지현을 비롯해 수개월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배우들과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선호는 "지현이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배울 점이 굉장히 많은 친구다. 나한테 먼저 말도 걸고 다가오려는 게 느껴져서 감동이었다"며 "경수나 지현이 모두 작품에 애정이 많은 것 같다. 작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끔씩 울컥하는 게 보였다. 종방연 할때 특히 그랬다"고 전했다.
"제가 원래 작품 같이 한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경수랑은 가끔 통화해요. 지현이랑도 단체 채팅방에서 장난치고 수다 떨어요. '투깝스'때 같이 연기했던 정석이 형이나 혜리하고는 얼마 전에 통화했어요. '미치겠다, 너땜에!' 팀하고도 연락하고 같이 밥 먹고 그랬어요. 지금 와서 보니까 이 정도면 연락 잘 하는 편이네요. 부모님이 서운해 하시겠는데요.(웃음)"
■ "연극은 생생한 맛, 드라마는 한치 앞 모르는 긴장감"
김선호는 2009년부터 '옥탑방 고양이' '셜록' '거미여인의 키스'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는 연극과 드라마의 차이점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연기를 대하는 김선호의 진심과 열정 어린 자세가 느껴졌다.
"연극은 아무래도 드라마보다 더 라이브한 맛이 있죠. 바로 앞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반응을 느낄 수 있잖아요. 숨소리까지 다 들려요. 드라마는 대본 속에서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져가는 걸 느끼는데 대부분 한치 앞을 모르다보니 더 기대되고 재미있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촉박한 상황이 잦다 보니까 배우의 순발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요. 반면 연극은 오랜 시간 새로운 인물을 구축하고 창조해서 완전해졌을 때 무대에 올라가거든요. 캐릭터를 채워야하는 데까지 둘 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장단점이 뚜렷해요. 그런 세세한 차이가 재미있더라고요."
"배역의 비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제가 주목받아야겠다는 욕심을 가진 적은 없어요.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저 사람이 빛나고 정말 진짜 같았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그게 배우한테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요."

■ 지난해 이어 올해도 '열일 중', "불러주면 가는 게 맞다"
그야말로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김과장' '최강 배달꾼' '투깝스'에 이어 올해 역시 '미치겠다, 너땜에!'와 '백일의 낭군님'까지 공백기 없이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다. 연기가 좋아서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백일의 낭군님' 촬영 도중 쓰러지는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저를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가는 게 맞다고 봐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도 있는데, 이제 와서 보니까 제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여름에 한복을 껴입고 촬영하는데 더위를 먹었는지 주저앉은 적이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체력이 떨어져 있었더라고요. 드라마 끝나고 몇 개월 푹 쉬니까 회복됐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몸 관리 하고 있어요."
■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장점, 편하게 다가가는 배우 되고파"
그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다음 작품도 꼭 같이 하고 싶은 배우'라고 답한 후 "연기뿐 아니라 인성적인 면까지 모두 포함이다"고 했다. 늘 겸손한 자세로 시청자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가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저는 외적으로 되게 화려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댓글 중에 '김선호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보면 볼수록 잘생겨보이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비호감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평범하고 편안하게 어떤 역할이든 그 사람처럼 그려냈으면 해요. 아주 특별하기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요. '어? 저런 사람 옆에 꼭 있잖아'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tvN 제공
김상록 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