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월드 챔피언십(WBC) 우승 전주연 모모스커피 바리스타 “훌륭한 바리스타 조건요? 딱 하나 꼽자면 친근함이죠”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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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는 10년의 각고 끝에 세계 정상에 섰다. 그녀는 “훌륭한 바리스타 조건은 기술보다 친근함”이라고 말했다. 강원태 선임기자 kang@ 2019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모모스커피의 전주연 바리스타는 10년의 각고 끝에 세계 정상에 섰다. 그녀는 “훌륭한 바리스타 조건은 기술보다 친근함”이라고 말했다. 강원태 선임기자 kang@

세계 커피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2019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바리스타 전주연(32) 씨.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주 전 씨가 이사 겸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모모스커피(대표 이현기·41·부산 금정구 오시게로 20)에서 그녀를 만났다.

"지난해 WBC선 제한시간 초과해 감점

올핸 마음껏 하자는 생각으로 임해

내 이름 세계 최상위 랭크, 가슴 벅차

마이클 잭슨 서 있는 대회 장면 보고

2009년 중반부터 출전 꿈 가지게 돼

도전 9년 만에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

우승 계기로 돈 벌겠다는 생각 없어

스페셜티 생산·구입에 역할하고 싶어

맛있는 커피 내리려면 좋은 물 써야

좋은 커피란 모든 맛이 조화로워야 해"

전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매장을 오가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바이런의 말처럼 그녀의 위상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한 주 내내 언론 인터뷰가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는 손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놀랄 만큼 담담했다. 향후에도 유명세를 등에 업고 수익을 쫓기보다 커피 농가의 수익증대와 좋은 커피의 생산·구입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착한' 소망을 밝혔다.


지난해 우승자이자 최초 여성 우승자였던 폴란드의 아니에스카 로에브가 전 씨를 안고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지난해 우승자이자 최초 여성 우승자였던 폴란드의 아니에스카 로에브가 전 씨를 안고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WBC 우승 소감은?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개인적인 기쁨도 기쁨이지만 한국이란 나라 이름을 가슴에 안고 내 이름이 최상위에 랭크된 게 가슴 벅차더라.”

-매장이 많이 붐비는데.

“아무래도 손님이 좀 늘었다. 우승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고부터 하루 평균 200~300명 늘어난 것 같다. 평소에는 1000명가량 온다. 순간적으로 늘었지만 곧 빠질 거다. (웃음)”

-우승 이후 신변에 달라진 게 있나?

“인터뷰 많이 잡힌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우승해도 상금 같은 것도 없고 단지 명예가 있을 뿐이다. 사실 10년 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업계에선 많은 분들이 알아줬는데, 우승 이후 일반 손님들이 많이 알아본다.”

-지난해 14위에서 올해 우승했는데, 비결이 있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이 대회 규정에 15분의 제한시간이 있는데, 지난해에는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감점을 당했다. 그래서 올해엔 너무 잘하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러다 보니 긴장이 덜했고,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WBC 심사 기준은 어떻게 되나?

“15분이란 제한된 시간 내에 에스프레소, 밀크음료, 첨가음료를 각 4잔씩 심사위원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나만의 커피 주제를 설명하는 형태이다. 바리스타가 얼마나 균일한 커피를 추출해 내는가, 커피가 얼마나 긍정적인 향미를 가지고 있는가 등을 평가한다. 실제 커피의 향미와 바리스타의 설명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바리스타의 커피 철학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등도 평가 대상이다. 맛을 보는 심사위원과 기술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따로 있다.”

전 씨가 테이블에 걸터앉아 심사위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전 씨가 테이블에 걸터앉아 심사위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이 대회에선 주어진 테이블 2개를 선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셋팅할 수 있는데, 전 씨는 심사위원과의 사이에 테이블을 두는 대신, 그 위에 걸터앉아 대화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 자연스럽게 심사위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게 돼 훨씬 친근하게 준비한 것을 얘기할 수 있었다.

-발표 주제가 ‘탄수화물이 커피의 향미에 미치는 영향’이었는데.

“커피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성분이 바로 탄수화물이다. 그래서 커피에서 탄수화물을 추출해서 창작음료 재료로 활용했다.”

전 씨는 커피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탄수화물 추출을 위해 부경대 식품공학과의 도움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WBC 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2009년 중순부터 준비했다. 그 전에는 커피가 좋긴 했는데, 딱히 어디에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현기 대표가 한 영상을 보여줬는데, WBC 경연 장면이었다. 너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꿈을 가지게 됐다.”

전 씨는 회사 측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2009년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다. 지역 예선이 있는 대회였는데, 부산·경남에서 5위를 했고, 같은 해 두 번째 나간 대회에선 부산·경남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이후 WBC 국가대표를 뽑는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십(KNBC)에 해마다 출전한 전 씨는 2013년과 2014년 연달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5년엔 3위로 미끄러졌다.

“뭐가 문제가 있는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심사위원이 되기로 했다. 심사위원 입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 심사위원 자격을 얻었고 대회에 참가했다. 심사위원을 하게 되면 그 다음해 선수 출전이 제한되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했다. 와신상담 끝에 드디어 2018년 KNBC에서 우승, 국가대표로 WBC에 출전했다. 2019년 두 번째로 국가대표로 출전해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전 씨의 우승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건 온천장 모모스커피 본점. 전 씨의 우승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내건 온천장 모모스커피 본점.

-폴 바셋은 이 대회 우승 후 한국에 자신의 이름으로 체인점을 론칭하는 등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우승을 계기로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국내 시장에서 뭘 더 해 보겠다는 계획은 없고, 나의 주된 관심사는 해외 커피 산지에 있다고 보면 된다. '스페셜티' 커피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좋은 커피를 계속해서 생산해 내려면 커피 농부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커피 생산 농법의 연구·개발에 참여해 더 좋은 스페셜티 커피가 생산되고, 이런 커피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

-돈 욕심은 없나?

"크게 없다. 지금도 괜찮은 급여를 받고 있지 않나. 내 생각이 짧은가? (웃음). 오늘 일이 재미있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당신은 그렇더라도 대표 생각은 다를 텐데. 당신의 인지도를 활용해 기업을 더 키울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현기 대표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지점을 늘린다거나, 절대로 상업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안 할 거다.”

전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이현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의중을 물어 봤다. 이 대표와 전 씨의 생각은 거의 일치했으며, 전 씨에 대한 이 대표의 믿음은 매우 굳건했다.

-바리스타가 된 계기는?

“대학(동서대) 3학년이던 2007년 모모스커피 오픈 때 파트 타임으로 일한 게 계기가 됐다. 4학년 때 사회복지관과 어린이집 등서 실습을 했는데 의미 있는 일이긴 했지만 에너지가 너무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카페 일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09년 초 졸업과 동시에 모모스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게 됐다.”

-도대체 스페셜티 커피란 뭔가?

“전 세계 커피전문가단체인 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정한 기준에 따라 80점 이상의 점수를 얻은 생두를 말한다. 표면적으로 퀄리티가 높은 커피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기준이 매우 애매해졌다. 또 너무 퀄리티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가 생겨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커피 농가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 그로써 더 좋은 커피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모모스에선 스페셜티 커피를 어떻게 구입하나?

“대표가 1년에 250~300일가량 해외 산지를 돌아다닌다. 농민들과 밥도 같이 먹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더 애정과 신뢰가 쌓이고, 그러면 농가가 더 좋은 커피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는 것 아니겠나. 올해는 대표가 한 번 방문하고 나면 내가 한 번 더 방문하려 한다.”

-훌륭한 바리스타의 조건은 뭘까?

“나는 딱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로 서비스다. 아무리 커피를 잘 만들면 뭐 하나. 그 사람이 손님에게 뻣뻣한 자세로 서빙하면 그 커피가 맛있겠나. 나는 친근함이란 말을 좋아한다. 커피 추출은 기계가 할 수 있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사람의 몫이다. 바리스타는 손님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테크니컬한 부분도 있을 것 아닌가?

“그건 기본이다. 후각과 미각이 중요한 요소인데,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맵고 짜고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좀 삼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방법이 있나?

“커피를 흔히 물장사라고 하지 않나.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물은 일반적인 집에서 사용하는 정수기 물과 다르다. 카페 물은 커피 추출에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집에서도 보다 맛있게 커피를 내리려면 삼다수 등 추출에 적합한 물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

-그럼 좋은 커피란 어떤 건가?

“우리 회사가 중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클린 커피'다. '클린컵’(커피 맛의 투명성과 선명성)이 뛰어난 커피가 좋다. 클린컵이 뛰어나면 향의 선명도도 자연스레 뛰어나다. 한 가지 맛이 튀지 않고 모든 맛들이 조화로운 게 좋은 커피다.”

-당신에게 커피는 뭔가?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해야 하는 것,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일치하는 건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에 전 씨는 “지금은 혼자가 좋은 것 같다. 지금 시집 가면 (내 커리어가) 너무 아깝잖아. 이번 WBC 끝나고 본격적으로 연애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등을 했으니 향후 2~3년은 틀렸구나, 생각하고 있다.(웃음).”

그녀가 내려 준 아메리카노 커피는 맛이 웅숭깊고 향은 아득했다. 그녀의 환한 미소와 친근함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전주연 씨.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전주연 씨.

‘밝고 향기로운’ 그대

전주연 바리스타는 밝은 에너지를 뿜뿜 내뿜는다. WBC 참가의 여독이 덜 풀린 상태에서 숱한 인터뷰 일정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답변도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했다.

모모스커피 이현기 대표의 평가. “전 바리스타는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못하는 일이 없다.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 타고난 것 같다. 우리 매장에서 단골손님이 가장 많은 직원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리스타의 길을 택한 전 씨. “10년 전에 바리스타 길을 가려 할 때 ‘그거 아르바이트 일 아니냐’며 부정적으로 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뒤바뀌었다. 다른 친구들은 쉴 때 여행을 가는데, 나는 일로써 여행을 다닌다.”

수상을 계기로 커피의 공정무역에 힘을 쏟겠다는 그녀의 포부가 당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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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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