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사투리 여행] 부울경 방언 인터랙티브 콘텐츠
같은 듯 다른 ‘경상도 사투리’ 내가 쓰는 말은 어디쯤일까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무대는 전국 지방 학생들이 모인 서울 신촌의 하숙집이다. 논문 ‘방송언어의 비표준어 양상에 관한 연구’(김현영)에 따르면 이 드라마에는 사투리가 총 3647회 등장하는데, 가장 많이 나온 사투리는 ‘가시나(92회)’였다. 하숙집 주인이 경남 마산(지금의 창원시) 출신 부부이고, 그들의 딸이 주인공이라서다. 대중문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가시나’나 ‘밥 묵자’로 쉽게 대표되지만 그게 다일까?
지역 변별력 기준 30개 단어로
퀴즈 풀면서 다채로운 방언 경험
부산방언도 기장 등 갈래 나뉘어
사투리 개성 재발견이 주된 목적
이 드라마에는 경남 삼천포(지금의 사천시) 출신인 하숙생 ‘삼천포’가 주인공 ‘나정’의 사투리를 번역해 주는 장면도 나온다. 마산과 삼천포의 사투리는 동남방언으로 함께 묶인다. 동남방언은 대체로 경상남북도 전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부울경 사투리는 모두 똑같을까?
부울경 방언 인터랙티브 콘텐츠 ‘사투리의 뿌리를 찾아서’는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평면적으로 뭉뚱그려지는 경상남도 방언의 풍성한 결을 이용자가 경험해 보는 참여형 콘텐츠는 없을까?
경남방언 사전에 수록된 방언 2만여 개를 뒤져 방언의 지역 변별력을 기준으로 30개 단어를 골라 퀴즈를 구성했다. 부산 울산 경남 20개 시·군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형은 단어에 따라 많게는 수십 개에 달한다. 이 중 이용자는 단어별로 10개 이내로 제시되는 보기 중에서 자신이 쓰거나 알고 있는 사투리를 단어당 최대 3개까지 고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은 부추 부침개지”라는 문항에서 ‘부추’의 방언은 5개가 제시된다. 이 중 부추의 경남방언은 ‘정구지’계와 ‘소풀’계로 크게 나뉜다. 거창부터 부산까지 경남 동북 지역에서는 ‘정구지’, 함양부터 거제까지 경남 서남 지역에서는 ‘소풀’을 주로 쓴다.
경남방언은 이처럼 낙동강 본류를 따라 대체로 동서로 크게 나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김정대 경남대 명예교수는 경남서부방언을 낙남정맥을 따라 다시 남북으로 나누지만 동서로 나누는 견해도 있다.
부추가 경남방언의 동서 분할을 보여 주는 어휘의 예라면 ‘오너라’는 문법의 예다. 퀴즈 중 “늦었다. 빨리 들어오너라”에서 ‘오너라’의 방언 보기는 5개다. 이것은 다시 크게 울산 지역의 ‘오너라’, 울산을 뺀 동부 지역의 ‘온나’, 서부의 ‘오이라’로 나뉜다. 이렇게 이용자의 방언형 통계가 쌓이면 이용자의 사투리 족보도 좁혀진다. 총 15개 문항 30개 단어의 퀴즈를 다 풀면 내가 쓰는 사투리와 유사도가 높은 상위 3곳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대 명예교수는 “어휘는 차용이 쉽지만 어법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등고선처럼 방언 지역을 나누는 ‘등어선’을 그릴 때는 어휘와 음운, 어법 순으로 가중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부산 사람이 ‘소풀’을 쓸 수도 있지만 ‘오이라’를 쓸 가능성은 낮다는 이야기다. 퀴즈 단어 중 어휘뿐 아니라 어법에 해당하는 조사나 음운에 해당하는 성조(높낮이)를 두루 포함한 이유다.
자신의 ‘부울경 방언 족보’를 확인하고 나면 경남방언 사전을 토대로 모든 방언의 사용 지역을 인터랙티브 지도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콘텐츠의 목적은 ‘정답 찾기’가 아니다. 일상 언어 생활에서 섞이고 변화한 내 방언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사투리의 개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누구나 방언 사용 지역을 손쉽게 찾아보려면 지역별로 체계적인 방언 사전 제작이 필수다. 이근열 부산대 언어정보학과 강의교수는 “부산방언은 기장, 명지, 동래, 양산 인근 지역으로 다시 나뉠 수 있고 물고기나 어업 관련 방언이 특히 풍부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담은 부산방언 사전은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대 명예교수는 “‘잠자리’의 경남 방언형은 잘래비, 철기, 앵오리, 수벵이, 털기 등으로 너무나 다양한데 이러한 방언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 환경과 관련이 있다”며 “생태계의 종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한 언어의 멸종은 언어 생태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방언의 소멸은 우리말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박진국·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