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③] "그만둔 대학, 왜 다시 가고싶냐고요?" 해경이 된 이대현 씨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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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디지털 청년기획 '고졸'
뜬구름 잡는 강의에 환멸 느낀 대학 자퇴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고립된 생활 자초
해경의 길 확정 "이제 제대로 공부해야죠"



대학을 자퇴하고 꿈을 찾아 헤매다 세상에서 자신을 ‘삭제’한 한 청년이 있다. 끝내 국가에 헌신하는 해양경찰이 되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부산일보DB 대학을 자퇴하고 꿈을 찾아 헤매다 세상에서 자신을 ‘삭제’한 한 청년이 있다. 끝내 국가에 헌신하는 해양경찰이 되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부산일보DB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환멸

가을 햇볕이 포근하게 감싸는 부산의 한 커피숍 테라스. 아르바이트 하느라 시간 내기가 힘들다던 그를 기다렸다. 드디어 인터뷰 할 시간을 내었다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10분가량 지났을까. 180cm가량 훤칠한 키, 디지털 전투복 무늬 재킷 아래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름은 이대현(29·가명). 대현 씨는 올 8월 해양경찰에 최종 합격한 뒤 임용대기 중이다. 굳이 그를 대면하고 싶었던 건 그가 살아 온 삶, 특히 학교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통성명을 하고, 서로 긴장이 조금 풀렸다 싶자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대학에 가시겠어요?”

대현 씨는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입술을 매만졌다. 햇빛을 받은 갸름한 얼굴의 오뚝한 코, 그 오른쪽에 살짝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 보였다.


지난달 해운대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대현 씨.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쑥스러운 듯 얼굴과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황석하 기자 지난달 해운대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대현 씨.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쑥스러운 듯 얼굴과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황석하 기자

그는 4년 전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니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사실 대학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걸 보면 괜히 그만뒀나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깊이 마음 속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일말의 미련? 그런 감정이라 볼 수 있을까. “저도 제 감정을 잘 모르겠네요. 굳이 표현한다면 ‘찝찝함’이라고 해 두죠.”

대현 씨는 2011년 부산의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경영학. 번듯한 기업 CEO가 되려고 거길 선택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적성을 고려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영학은 학문의 폭이 넓잖아요? 그래서 우선 배우면서 다양한 것을 모색해보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보낸 첫 해는 실망의 연속이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고. 대학에서 취업하면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것을 배우기 원했는데, 그런 강의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휴~.” 아주 짧은 한숨을 그가 내쉬었다.

“수강했던 교양 과목 중 ‘세계종교학’ ‘세계음악사’가 생각나네요. 뭐 그것도 학점을 메우려고 선택했지만.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강의였어요. 이렇게 비싼 등록금 내면서 대학에 계속 다녀야 하는지 회의감도 들었고요.” 대현 씨가 기억하는 최악의 순간은 대학에서도 족집게 강의를 접했을 때다. 시험 앞두고 강사가 출제될 부분을 콕콕 찍어줬던 것.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을 위한 기계적인 공부가 계속된 셈이다.

동기, 선후배들과 어울리고 연애도 하면서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진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대학 때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네요. 1학년 1학기 마치고 바로 입대했어요. 뭐 다들 찔끔 하다 어디 가버리고, 찔끔 하다 휴학하고 이래서…. 그땐 연애도 안 했어요.”

2013년 전역 후 2학기에 복학한 대현 씨. 여전한 환멸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선택한 탈출구는 휴학. 그는 평소 관심이 가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모색

“저는 손으로 하는 정교한 작업을 좋아했어요. 설탕공예나 인테리어, 문신 기술 같은.” 그의 눈이 제법 반짝였다.

대현 씨가 휴학 후 처음 시도한 게 미용실습이었다. 그가 미용학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다양한 수강생 구성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미용고 학생부터 부모님뻘 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이날부터 하루 두세 시간씩 가위를 잡거나 파마 롤을 말았다. 손에서 미용약품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미용학원 강사는 그가 다닌 대학 출신이라 그런지 그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나도 대학을 나왔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게 제일 멋진 거야.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대현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미용학원에서 6개월 동안 미용 실습을 했다. 부산의 한 미용학원 실습 장면. 부산일보DB 대현 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미용학원에서 6개월 동안 미용 실습을 했다. 부산의 한 미용학원 실습 장면. 부산일보DB

미용의 길이 안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대현 씨는 6개월 만에 미용학원을 그만뒀다고 한다.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나는 다한증도 미용실습의 걸림돌.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시험 칠 때 손에 땀이 나서 종이가 젖어 찢어질 정도였어요. 미용실습 때도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나니까 가위가 자꾸 미끄러져서 손에 착착 감기지 않았습니다.”

대현 씨의 ‘휴학 여정’은 미용학원에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이어졌다. 영사실 보조 아르바이트였다. 10개 상영관을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돌발 사고에 대비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래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어 재미있었겠다고 하자 쓴웃음을 지었다.

“짜장면집 아들이 짜장면 잘 안 먹는다고 하잖아요. 영사실에서 보는 영화는 몰입도가 떨어져서 별 재미가 없어요.”


■ 결단

한 편의 영화가 언젠가 끝나듯, 그에게 복학 시점이 다가왔다. 취업 ‘스펙 쌓기’를 꼭 해야만 하나, 스펙 쌓는다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어디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라도 갈까 생각해봤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였죠. 시험 한 방으로 취업하는 공무원 쪽에 점점 마음이 끌렸습니다. 스펙 상관없이 시험 과목 공부만 하면 되니까요.” 어느새 그는 대학이 굳이 필요 없다는 결론까지 내달렸다.

그렇지만 최종 학력이 ‘고졸’이 된다는 생각에 자퇴를 주저하진 않았을까. 단호하고 차가운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소위 말하는 ‘급’이 있는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취업에 유리한 학벌이 아니면 애써 대학 졸업장을 딸 필요가 없다고 웅변하는 것 같았다.

대현 씨는 2016년 대학으로 돌아가는 다리를 불살라버렸다. 부모님께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며칠 뒤 어머니께 대학을 그만뒀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는 도저히 자퇴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독단적으로 실행한 일이라 부모님 충격도 컸다.


대학을 그만 둔 대현 씨는 본격적인 공무원 준비에 돌입한다. 이후 일상의 공간은 집과 독서실이 전부였다. 부산일보DB 대학을 그만 둔 대현 씨는 본격적인 공무원 준비에 돌입한다. 이후 일상의 공간은 집과 독서실이 전부였다. 부산일보DB

본격적인 공무원 준비가 시작됐다. 대현 씨가 설명한 ‘집-독서실’ 일상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눈뜨면 오전 9시. 바로 가방을 챙겨 독서실로 향한다. 걸어서 2~3분 거리다. 배가 고프면 ‘슥’ 집에 들어가 홀로 늦은 점심을 차려 먹는다. 다시 독서실로 돌아와 책을 편다. 저녁에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최종 귀가 시각은 자정을 넘겨서다.

“물론 공무원 준비 기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에요. 처음엔 동네 친구들도 자주 만났어요. 겉으론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었는데, 100% 즐길 수 없었어요. 오히려 돌아오는 길에 불안감만 커졌습니다.”


■ 삭제

대학까지 포기하고 선택한 길,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 대현 씨는 고심 끝에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웠다. 그의 고교 친구 박규민(29·가명) 씨는 얼마 전 대현 씨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대현이었어요. 2~3년 만에 연락했던 것 같네요. 사실 종종 전화를 걸어봤는데, 다른 사람이 받아서 당혹스러웠죠. 친구들에게 소식을 물어봐도 자초지종을 아는 친구가 없더라고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입하려 전화번호를 바꿨을 것 같다는 짐작은 했어요.” 규민 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의 대현 씨가 공무원 준비 중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대현 씨는 몇차례 공무원 시험 낙방 끝에 올해 8월 해양경찰 공채에 최종 합격했다. 올 6월 울산에서 치러진 남해해양경찰청 채용 시험 장면. 부산일보DB 대현 씨는 몇차례 공무원 시험 낙방 끝에 올해 8월 해양경찰 공채에 최종 합격했다. 올 6월 울산에서 치러진 남해해양경찰청 채용 시험 장면. 부산일보DB

대현 씨는 고립을 자초하며 시험 준비에 몰두했지만, 합격이 녹록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했던 교도관, 경찰, 해양경찰 시험은 낙방의 연속. 필기시험에서 아예 탈락한 적도 있고, 체력 점수를 적게 받아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한 적도 있었다.

간간히 친구들 소식을 들었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도 있었고, 한 녀석은 요리를 배워 부모님이 운영하던 중화요리점을 이어 받았다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아버지 친구 아들의 취업 소식도 들어야 했다.

“어느 날 독서실에서 돌아와 컴컴한 방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어요. ‘나는 지금 도대체 뭐하고 있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죠. 올해 들어 거의 임계점에 도달했던 것 같아요. 또 떨어지면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당시 불안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해양경찰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기 하루 전. 불안한 마음에 어딜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 머물렀다. 그날 밤 대현 씨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해양경찰 시험에 최종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 새길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대현 씨는 두 손으로 감싼 커피잔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렸고, 그가 무겁게 입을 뗐다. “사실 정식 임용되고 직장에 적응하면 방송통신대라도 다녀볼까 생각 중이에요.” 노트북 컴퓨터에 그의 말을 옮기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다시 보았다. 무척 의외여서다.

“처음 대학에 다닐 때는 흥미도 없었고 내가 무엇을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제 해양경찰이라는 길이 정해졌어요. 그래서 업무 실력을 전문적으로 키울 수 있는, 행정학을 공부하고 싶네요.”

대현 씨가 오랜 방황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졸을 선택한 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깨달은 게 뭔지 물었다.

“무엇을 할지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대학에 진학하는 게 중요해요. 남들 다 가니까, 안 가면 혼자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대현 씨는 후련하다는 듯 남은 아이스커피를 다 마시고 얼음만 남겼다. 그의 뒤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계속 반짝였다.

황석하·박세익·이승훈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hsh03@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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