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⑥] 저임금 고졸은 ‘노오오오력’하지 않은 개인 탓?
<부산일보> 디지털 청년기획 '고졸'
고졸자 임금은 대졸 이상의 60%대 그쳐
중소기업-대기업 하청 구조가 주된 원인
산업 현장에서는 “고졸자 능력 뛰어나다”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 학생 재능·소질 발굴은 여전히 뒷전
서울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에서 교육 연구부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강은 교사. 경력 20년차인 그는 자동화기계과 교사로, 학생의 진로에 관심이 있어 2010년부터 학과내 직업진로교육을 맡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직업교육과 취업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노원구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 방송 강연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청소년 진로 교육에 대해 깊은 고민을 들려주고 있는 이 학교 이강은 교사와 마주 앉았다.
이 교사는 지난 10년간 진로지도 교사로 일하며 우리 교육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아직도 아이들의 재능이나 소질을 이끌어내주는 데 소홀하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특성화고에 온 아이들조차도 자신의 전공을 깊이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 성적에 따라 오는 현상이 여전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서울은 과거에 비해 인식이 좀 개선돼서 내 재능을 좇아가기 위해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이 좀 늘었지만, 지역에선 아직까지 이런 변화가 저조해요. 중학교 단계에서 학생 진로교육이 전혀 안돼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 학력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 교사는 특히 학부모들이 과거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특성화고에 보내기 꺼려하는 현상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또 고졸로 취업을 해도 대졸자와 임금 격차가 커 ‘학벌 사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과 노동환경 차이가 대체 어느 정도여서 그러는 것일까?
■ 대졸보다 적게 벌고, 일은 많은 고졸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근로자수는 1084만 6459명이다. 대졸 이상 근로자가 471만 9690명으로 전체의 43.5%를 차지해 가장 많지만, 고졸 근로자도 403만 9975명, 전체의 37.2%에 이르러 규모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임금면에서는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같은 자료에서 지난해 대졸 이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457만 1000원이었지만, 고졸은 299만 1000원에 그쳤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고졸 근로자의 임금이 대졸 이상의 60~65% 수준에 그친 셈이다. 대졸 이상과 고졸자의 평균 임금이 이 정도이지만, 여성 고졸자만 따로 보면 이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다. 지난해 여성 고졸자는 한달에 평균 233만 3000원을 손에 쥐었다.
노동시간은 이와 정반대다. 지난해 대졸 이상 근로자는 한 달에 158.9시간을 일했지만, 고졸의 같은 기간 노동시간은 168.8시간으로 조사됐다. 학력에 관계 없이 해를 거듭할수록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고졸자의 노동시간이 대졸 이상보다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4시간가량 길었다. 다시 말하면, 고졸자는 대졸 이상 근로자보다 적게 벌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 사회도 이 같은 상황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고졸 및 대졸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의식' 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고졸자에게 적절히 대우하고 있다?"는 질문에 "매우 그렇지 않다(6.3%)" "그렇지 않다(41.2%)"와 같이 부정적인 답변이 47.5%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매우 그렇다"는 0.75, "그렇다"는 12.6%에 그쳤다.
■ 고졸, 대졸보다 능력 부족할까?
고졸 말단 여사원들이 회사의 범죄를 폭로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여상을 졸업해 입사 8년차인 이들은 커피 타기, 사무실 정리, 심지어 남성 직원들의 구두닦이 심부름까지 온갖 잡무에 시달린다. 하지만, 업무 능력은 회사의 웬만한 대졸 사원보다 뛰어나다. 그렇다면 실제 기업들이 바라본 고졸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경영자총협회 심상균 회장은 “솔직히 중소기업의 대졸 가운데 고졸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이 많은 게 사실이다”고 단언한다. “대졸 사원들 보면 대학에서 실무 능력이나 지식을 제대로 쌓아서 왔는지 의문이 많이 들 때가 있어요. 역량은 미치지 못하는데 대졸이라는 이유로 어깨에 힘만 들어가죠. 심지어 일부 대졸 직원은 입사 이후에 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 같은 곳에서 직무능력을 다시 배우게 하기도 합니다.”
심 회장은 반면 “고졸 직원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졸을 따라잡고 승진하기도 한다”면서 “현재 고졸과 대졸의 취업 상황이나 지원자들의 마인드를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교육비 부담으로 부모는 골병이 들고, 자신도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대기업 A사 인사담당자는 “대부분 고졸 직원이 나이가 어려서인지 패기가 넘치고 업무 추진력이 상당히 좋다”면서 “특정 분야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개발 활동을 하거나 대학에 입학하는 등 대졸자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겸손히 잘 메운다”고 밝혔다.
부산 중소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생각보다 똑똑하고 역량 있는 고졸 직원이 많다”면서 “고졸자가 진득하게 일을 하고, 애사심이 높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학력 간 임금 불평등 해소 시급
이강은 교사는 이런 학력 간 임금 불평등이 ‘대기업 우선주의’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대기업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고졸의 노동환경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하청 구조가 고질적인 문제다”며 답답해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아가지 않아야 하고, 정부의 단순 임금보전 수준을 넘어 중소기업을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에서 독립적인 구조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급선무죠.”
그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와 연결된 중소기업 중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곳은 대기업 하청이 아닌 수출기업이란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대기업이 내려 앉으면 하청 중소기업까지 다 타격을 받는다. 대기업이 원가 절감하면 중소기업 직원의 임금까지 깎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도 “고졸자라도 특별한 기술을 가진 인력이라면 임금을 많이 줘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대기업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면서 “차별적 임금제도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단하고 장기 플랜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공 지식 등 고졸자와 대졸자 간 간격을 줄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대졸자들이 4년간 배운 전공 지식이나 경험을 보완할 수 있는 전문 교육 과정이 특성화고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디지털, 공학 등 일부 전문 분야에서는 관련 전공을 공부하거나 대학 내 공모전 등 경험을 쌓은 대졸자가 유리하다”면서 “기업-교육청 간 산학협력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임금 불평등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이 1만 원 이상인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고졸자 취업이 거의 100%입니다. 고졸자 임금이 대졸자와 거의 비슷해 굳이 대학에 안 가려고 해요. 호주도 기술을 가지고 내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정착돼 있죠. 선진국처럼 모두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도 앞당겨야죠.”
박세익·황석하·이승훈 기자 그래픽=류지혜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hsh03@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