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④] 새로운 도전 앞에 나타난 건 드높은 '학력의 벽'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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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디지털 청년기획 '고졸'
-기계공고 졸업 박장한 씨
새 도전 위해 대기업 퇴사 후 고졸 한계 실감
-도시철도 기관사 박지훈 씨
고졸로 공기업 입사 "사기업이었더라면…"

<‘대학민국 고졸’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 최소한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 처절한 경쟁 속에서 기를 쓰고 살아간다.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대입 생존자’들 앞에는 더 큰 쓰나미가 덮쳐온다. 취업이다.

좌표 설정 없이 대학에 간 이들은 블랙홀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욜로(YOLO·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와 같은 말을 추종하며 현실을 탈출하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 좌절한 청년들은 더는 미래가 없다고 소리친다.

애초에 그들이 ‘고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 엄청난 시간과 사교육비, 등록금을 꿈을 향한 일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학은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일 순 없을까.

청년들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줄 근본적인 ‘혁명’이 그래서 절실하다. 고졸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호주 이민을 결심한 박장한, 고교 졸업 후 부산 도시철도 기관사가 된 박지훈 씨. 두 청년의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엿보기로 했다.


■ 떨림

가을 낙엽이 살포시 내려앉은 부산 온천천.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서 말끔한 단풍색 스웨터를 입은 청년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장한(27) 씨다.

그는 내년 초 대한민국을 떠난다. 호주로 이민 간다. 고단한 한국에서의 삶을 보상받았다 생각해서일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카메라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인터뷰) 하면 되는 거죠? 안녕하세요. 저는 93년생 박장한입니다.” 입술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웃음 가득했던 표정도 어느새 진지해졌다.

“호주 가는 건, 학력이나 취업 때문은 아니에요.” 밝고 편안한 목소리에서 아쉬움보다는 후련함, 그리고 기대감이 더 다가왔다.

장한 씨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중학교 졸업 때 이미 ‘고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왜 굳이 중학교 때….” 민감한 질문이다 싶어 말끝이 흐려졌다. 카페에 흐르는 재즈 음악이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빨랐다. 간단했다. 바로 ‘취업’이었다. 조금은 조숙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 천장을 잠시 보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대학 안 가고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업계 가는 친구들 대부분 그럴 거예요. 가정형편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누나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거든요.” 간혹 앞머리에 가려진 그의 짙은 눈썹이 움츠러들었고, 두 손은 계속 이리저리 움직였다.

고교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어린 장한(왼쪽에서 두 번째)과 친구들. 박장한 씨 제공 고교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는 어린 장한(왼쪽에서 두 번째)과 친구들. 박장한 씨 제공

그의 결정에는 친한 친구들의 영향도 컸다. 어느 날 교실에서 한 친구가 대기업 취업률이 좋은 한 고등학교를 검색하고 있었다고. 부산에서도 나름대로 명망 있는 학교라 고민은 무의미했다.

갑자기 어린 장한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중학생이 무슨 꿈이 있었겠습니까?" 슬쩍 미소 띤 그의 표정에서 짓궂은 어린 장한의 모습이 교차했다.

“막연히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뭐가 됐든. 이 목표를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실업계라고 생각했고요.” 어린 장한의 ‘새길’에 부모님도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계획한 대로 한번 해봐라”며 지지해주셨다. 어린 장한의 똘망똘망 큰 눈과 차분한 말투에 미소로 응원하지 않았을까.

부산기계공고에서 선택한 학과는 기계과의 ‘CNC선반’. “쇠 깎는 겁니다. 도면 주어지면 그것에 맞게 작업하는 거….” 마찬가지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이 과를 가면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 답이 계속 무미건조하다고 느꼈는지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후회는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후회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회사를 갈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저는 공부보다는 실무에 ‘초집중’했습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등 기술 경쟁에서 이기려고 친구들과 온종일 기술만 연마했어요.”


■ 도전

장한 씨는 수상 경력 등으로 졸업 전 취업에 성공했다. 경남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3년간 근무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페이도 좋았고 동료들도 최고였고….” 그런 곳을 떠난 이유를 물었다. “뭐랄까… 음….” 생각에 잠긴 듯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던 그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나이가 많지 않으니 계속해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거죠.” 어쩌면 젊은 청년에게 당연한 일을 괜히 물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는 입을 다문 채 꽤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뭐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과거의 그는 수없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을 밀어냈던 것 같다.

‘중학생 장한’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미래를 선택했었다고 고백했다. 글자만 적힌 전공 이름만 보고 학과를 선택한 것이다.

“CNC선반이 컴퓨터 관련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생소한 전공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검색 정도만 해서 들어갔던 거죠.”

식은 커피를 양껏 들이켠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호주에 갔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일단 영어부터 배우자 마음먹었죠. 어떤 분야에 도전하든 영어는 필요했으니까요.”


호주에서 캥거루와 한 컷. 박장한 씨 제공 호주에서 캥거루와 한 컷. 박장한 씨 제공

2년 뒤 한국에 돌아온 장한 씨는 처음으로 학력의 한계를 체감했다. 이력서를 넣으려 해도 ‘대졸 이상’ 문구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제가 느낀 바로는 대졸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채용 공고가 서너 배는 많았습니다. 최하 학력이 대졸인 거죠. 아무리 좋은 포트폴리오나 자격증이 있더라도 지원 자체를 못 하니…. 대졸자와 같이 경쟁할 기회조차 없더라고요.”

결국 장한 씨는 대졸 이상 문구가 적힌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프리랜서 1년 계약을 따냈다. 고졸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는데도 인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인정한 회사에서 그를 뽑은 것이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는 모양이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나름의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프리랜서 신분에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으니까요.”


■ 완생

1년 뒤 회사를 나온 장한 씨는 호주에서의 새 삶을 준비 중이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자세를 고쳐 앉은 장한 씨가 속 시원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돌아가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다른 조언을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다면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학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할 것 같아요. 아직 우리 사회는 대학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처럼 언제든지 하고 싶은 일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바뀔 때 필요한 게 대학 졸업장이었습니다.”

장한 씨는 과거를 향한 후회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가 커 보였다. “대졸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지만 고졸도 자기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던지고 싶은 말은 딱히 없습니다. 현실은 자기가 하기 나름입니다.” 기분 좋은 그의 건강한 기운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는 듯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tvN 드라마 ‘미생’을 내게 떠올려 주었다. “‘어이 고졸!’로 불리던 장그래가 결국은 미생에서 완생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하하.”


■ 탑승

박지훈(26) 씨는 평소처럼 도시철도 전동차 운전석에 앉았다. 주간제어기를 1단으로 올리자 전동차가 철도차량기지에서 스르르 미끄러졌다. 뒤따라오는 열차 간격을 고려하면서 승객을 제때 이송하기 위해 주간제어기를 4단으로 올려 속도를 높였다.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전동차가 어두운 철로 위를 “타닥” 소리를 내며 달렸다. 운전실에는 표지판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내어 읽는 지훈 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역사에 진입하기 직전 갑자기 전동차에 문제가 발생했다. 잘 달리던 전동차가 멈춰버린 것이다. 지훈 씨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는 우선 매뉴얼 대로 관제실에 이를 보고했다. 다음은 객실방송으로 승객들을 안심시킬 차례.

“차량 고장으로 잠시 정차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안전한 차내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훈 씨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방울이 흘렀다.

부산교통공사의 BTC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시뮬레이션 운전 교육 모습. 부산교통공사 제공 부산교통공사의 BTC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시뮬레이션 운전 교육 모습. 부산교통공사 제공

지난달 어느 평화로운 저녁 시간, 동래구의 한 카페에서 지훈 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낯선 기자인 내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었다. 얼굴은 한껏 긴장된 표정이었다. “만약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싶었죠. 시뮬레이션이었으니까 다행이었지, 전동차가 갑자기 멈췄을 때 정말 긴장됐습니다.”


■ 환승

지훈 씨는 올해 8월 부산교통공사에 입사한 수습 기관사다. 수개월 뒤 수습기간이 끝나면 부산 도시철도 2호선에 투입된다. 그는 “불과 3년 전 자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고 기관사의 길을 걷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2014년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남 진주시의 한 공과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가 컸다. 휴학 후 해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문득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7년 전역일이 다가오자 지훈 씨는 진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고 한다. 취업을 노리고 진학했지만 기계 일에 가슴이 설레었던 건 아니었다. 그가 타고 있던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파도에 흔들리듯, 그의 마음도 흔들렸다.

전역 후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왔다. 기관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면서다. “지인 중에 기관사를 하시던 분이 추천하셨어요. 밤낮이 바뀌어 힘든 점이 있지만, 그만큼 쉬는 날도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돼 해볼만 하다고.”

그때부터 지훈 씨의 마음은 기관사를 향해 질주했다. 우선 관련 서적을 구입해 독학을 하면서 부산교통공사의 기관사 교육원인 BTC아카데미 입교를 준비했다. 입사 시험에 필요한 기관사 면허증을 따려면 전문 교육기관에서 460시간 교육을 받은 뒤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2018년 2월, BTC아카데미에 입교했다. 대학은 복학을 미루고 휴학을 이어갔다.

아카데미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강의 때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전문용어가 전장의 총알처럼 휙휙 날아들었어요. 전동차의 속도와 철로 곡선 구간 등을 익혀야 하는데, 시뮬레이션 연습을 하면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긴장됐어요.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입교 뒤에 한동안 엄청 고생했어요. 두 달정도 지나니 뭔가 눈에 보이고, 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도착

이듬해 7월, 지훈 씨는 고생 끝에 드디어 면허증을 취득했다. 이어 9월에 휴학 중이던 대학에 자퇴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입사 이력서에 표시될 '최종학력 고졸'이 신경쓰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물론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취업이 안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휴학을 계속 권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훈 씨는 학력 자체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 졌다.


지훈 씨는 대학을 그만둔 과거의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엄지를 치켜들며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는 지훈 씨. 황석하 기자 지훈 씨는 대학을 그만둔 과거의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엄지를 치켜들며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는 지훈 씨. 황석하 기자

이어 그는 최종학력 ‘고졸’ 신분으로 부산교통공사 시험에 도전해 보란 듯이 합격했다. 지훈 씨가 3년 동안 깨달은 건, 전문 분야의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고 취업할 수 있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에 가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잖아요.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기를 쓰고 가려는 것도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기관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전문지식도 배웠어요. 조금만 더 가면 취업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뒀죠. 사실 요즘에는 무조건 대학에 가야한다는 인식이 많이 희석된 것도 같아요."

지훈 씨는 다만 최종학력이 고졸이었지만 학력 제한이 없는 공공기관이어서 입사가 가능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고졸 학력으로 민간 기업에 취업을 시도하는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다.

"만약 제가 기관사의 꿈을 포기하고 고졸 학력만 가지고 민간 기업에 가려했다면, 아마도 어려움이나 불평등을 느꼈을 겁니다. 아무래도 사기업은 학력이나 학벌 위주로 채용하는 곳이 많으니까요."

정말 대학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없습니다."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단호한 그의 목소리에 더없이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승훈·황석하·박세익 기자, 영상·편집 정수원 PD lee88@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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