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대 항만 중 ‘사망자 1위’… 부산항, 불명예 벗을 때
[안전 일터 우리가 만듭니다] 2. 심각한 부산항 항만사고
항만 작업은 선박 입·출항 일정에 따라 단시간에 고강도로 이뤄지면서 노동자의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부산항 북항의 한 터미널에서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하는 모습. 부산항운노조 제공
부산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 항만 작업은 선박 입·출항 일정에 따라 단시간에 고강도로 이뤄진다. 속도나 효율이 중시되면서 노동자의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항만 크레인 등 대형 장비를 많이 다루는 작업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특히 부산항은 우리나라 항만 사망사고 세 건 중 두 건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하다. 부산항은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환적 거점항’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전국 4대 항만 중 ‘사망자 수 1위’라는 오명도 떠안았다.
최근 5년 사망 19명 중 12명 발생작년 5월에도 지게차 깔려 1명 숨져
무리한 작업 강행 등 원인 꼽혀
장비 노후화도 사고 위험 부추겨
노조, 안전사고 예방 교육장 준비
■항만 사망사고 3건 중 2건이 부산항
지난해 5월 23일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배후단지 물류창고 인근에서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30대 노동자 A 씨가 대형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지게차 운전사가 하역작업을 위해 후진하다 A 씨를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였다. 앞서 2019년 12월 15일에도 부산항 신항에서 컨테이너를 검수하던 20대 노동자 B 씨가 컨테이너 사이에 끼여 숨졌다. 당시 B 씨는 컨테이너 사이 1m 공간에서 검수하고 있었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야드트레일러가 B 씨를 미처 보지 못하고 진입하다 또 다른 컨테이너와 부딪혔고, A 씨는 컨테이너 2개 사이에서 압착돼 현장에서 숨졌다.
28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전국의 항만에서 작업하다 사고로 다치거나 죽은 사례는 총 2800건이다. 특히 부산항에서 발생한 사고 빈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부산항운노조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 동안 부산항에서 숨진 노동자 수는 12명이다. 이 기간 전국 항만 전체 사망자 수는 19명으로 전체 항만 사망사고의 63%가 부산에서 발생한 셈이다. 전국 항만사고 사망자 세 명 중 두 명이 부산항에서 생길 만큼 부산항은 노동자의 억울한 희생으로 성장한 항만인 셈이다.
■‘추락’ 가장 많고, 주로 야간시간 발생
전국에서 발생한 항만사고 유형별로는 사다리나 컨테이너 등에서의 ‘추락 사고’ 비율이 19.8%로 가장 많았다. 이어 ‘넘어짐’(17.6%), 지게차 등과 ‘부딪힘’(16.0%), 지게차 등에 ‘끼임’(13.7%) 순이었다. 시간별로는 야간 근무(오후 9시~다음 날 오전 6시) 시간대에 발생한 경우가 18.7%로 가장 많았다. 근속기간별로는 6개월 미만 종사자가 전체 재해 피해자의 약 30%를 차지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항만 산재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총 53명이었다. 항만 작업의 사망만인율(1만 명당 사망자 수)은 지난해 평균 0.86으로 전 산업 평균 사망만인율인 0.46의 배 가까이 됐다. 특히 2018년부터 3년간 사망만인율은 1.25로, 전 산업 사망만인율(0.51)의 2.5배에 달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고 유형은 ‘부딪힘’으로 전체의 20.8%로 나타났다. 이어 ‘떨어짐’(18.9%), ‘물체에 맞음’(13.2%), ‘끼임’(11.3%) 순이었다. 근로자 근속 기간 기준으로는 6개월 미만 노동자의 사망률이 37.8%로 가장 높았다.
■반복되는 사고 이유와 대책은
전문가들은 항만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로 선박 입·출항 일정에 따라 작업이 이뤄지는 높은 강도의 노동을 꼽는다. 물동량이 폭주할 땐 고강도 노동과 인력 부족 등으로 작업자의 피로감 증가, 집중력 저하로 인한 산업재해 발생률이 높다는 것이다.
장비의 노후화로 인한 사고위험 가중도 한몫했다. 부산항은 국내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지만, 장비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 실제로 전국의 4대 항만 중에도 부산항만공사 관할 부두 안전사고는 최근 3년간 92건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재해율 역시 17.3%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산항운노조 관계자는 “부산항 북항의 경우 특히 장비 노후화가 심하다”면서 “항만 크레인은 내구 연한이 없어 오래된 크레인을 계속 사용하면서 근로자들은 안전사고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장비는 최대 100억 원대에 달하는 고가인 탓에 사측에서 비용 문제로 선뜻 교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부산항운노조는 항만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부산항운노조는 전국 항만 최초로 항만 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가상현실(VR) 교육장을 내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VR 교육장은 부산항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를 가상현실로 구현된 것으로 항만 근로자들이 간접 체험함으로써 사고 예방을 위한 수칙을 미리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항만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근로자 스스로 예방하기 위한 ‘안전 신문고’도 도입된다. 부산항운노조 자체 예산으로 구축한 신문고는 다양한 형태의 안전사고 요인을 사전에 근로자가 파악해 신고하면 노조가 당국 등과 협조해 개선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조광래 부산항운노조 교육홍보부장은 “현장 기업들이 안전환경 정착을 위한 투자와 관리체계 개발에 힘써야 하고 정부도 안전에 대한 관리와 투자를 병행해야한다”면서 “특히 사고 위험이 높은 노후 크레인에 대한 대책 마련과 크레인 등 항만 하역장비 내구연한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획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부산일보가 공동으로 마련했습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